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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Nov 09. 2023

김밥에 진심

당근이 들어간 김밥은 경쾌하다.

 중1 아들이 2학기 현장 체험학습을 간다. 장소가 에버랜드니 소풍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소풍날 김밥은 진리인데 아들은 점심을 사 먹겠다고 했다. 그 말이 조금은 서운하면서도 옳았다. 기온이 떨어져 차가운 김밥을 야외에서 먹는 건 아니었다. 놀이동산인데 가방을 무겁게 메고 다니는 것도 그랬다. 그래도 소풍 가는 기분 내고 싶어 전날 김밥을 싸 소풍 이브를 보냈다.

 아들 소풍날 김밥 싸는 게 즐거웠다. 전날 재료를 손질하고 침대에 누우면 설렜다. 다음날 아침 속재료들이 얼마나 어우러질지 궁금했다. 예쁜 모양으로 잡힐지 기대됐다. 밥은 고슬고슬 잘 지어져야 할 텐데... 쌀을 조금 불려두고 할지 그냥 할지 고민했다. 동그랗고 형형색색 말아진 김밥을 보면 먹지 않아도 뿌듯했다. 재료를 손질하며 우리 식구뿐 아니라 나눠먹고 싶은 가까운 이웃도 생각한다.


 날은 저녁까지 김밥이다. 라면과 김밥, 어묵꼬치까지 배불리 먹고 다음날이었다. 초5 아들이 말한다.

"나도 내일 소풍 가는데?"

통신문에 안내가 없어서 형이 소풍 가는 게 부러운 동생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다녀온 아들은 다시 한번 말했다.

"엄마 내일 도시락 싸가야 해."

아들의 말에 다시 통신문을 찾아보았다. 없었다. 게다가 둘째 아이 학교는 2학기 현장체험학습이 모두 취소되었다는 알림까지 받았었다.

"우리 반만 가는 거래."

아! 그럴 수 있겠다. 아이반 담임 선생님이 정보 담당이어서 1학기 때에도 우리 반만 다녀온 적이 있었다. 늦은 저녁 담임선생님께 네이버웍스로 확인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의 말이 맞았다. 담임선생님은 이미 메일로 소프트웨어 체험과 도시락 지참 동의를 보내셨다. 동의 회신 후 냉장고 김밥 재료를 확인했다. 당근이 없다. 당근 사러 마트 간다는 나에게 신랑은 말했다.

"그냥 당근 없이 싸."

안된다. 당근 없는 김밥은 경쾌함 증발이다. 아이와 마트에 갔다. 당근은 비쌌지만 나는 주황빛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음날 6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기상했다. 김밥을 쌀 때만큼은 척척 망설임 없이 주방의 주인이 된다. 손끝에 적당히 힘을 주어 말고 참기름을 살살 묻혀 칼로 자르는 순간 어떤 모양과 맛이 탄생할지 오늘도 두근거렸다. 나는 김밥에 진심이다.


 오랜만에 학급 친구들과 나들이에 들뜬 아들의 가방에 내가 싸준 김밥도 함께다. 아들을 꼭 안아주며 잘 다녀와~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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