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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23. 2021

우린 조금 슬프고 귀여운 존재

에필로그

누구나 한 번쯤은 억울해서 죽을 것 같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몇 날 며칠 잠을 못 자고, 악몽을 꾸고 위장병이 도지고, 십 년 넘게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대고, 폭음과 폭식의 날들을 보낸 경험 말이다. 억울한 사연의 무게는 다 다르겠지만, 억울한 심정만큼은 다 엇비슷하지 않을까?


조사관으로 십수 년 동안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함을 끌어안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억울함을 제대로 해결해 준 사례는 정말이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미미하다. 인권위가 구제 기관으로서 갖는 한계나 개인적 무능도 원인이지만, 합리적 조력이 없었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경우도 많았다.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하게 꼬이고, 가속되기 때문에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처럼 어딘가 추돌하지 않고서는 멈출 수 없게 된다.


어떤 사연은 정말이지 별거 아닌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골집 호박 넝쿨이 이웃의 담장을 넘으면서 시작된 분쟁이 고소와 민원, 무고죄 구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름을 도용당해 억울하게 구속되어 허위자백을 하게 되는 믿지 못할 경우도 있었다. 다이소에서 통조림 2개를 훔쳤다는 이유로 1년 넘게 감옥살이한 예도 보았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배움이 짧다는 이유로, 이주 노동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비정규직이라서, 결국 어디 한 곳 비빌 언덕이 없었기 때문에 가벼운 벌금이면 충분할 사안에 징역을 살기도 하고, 억울한 피해를 보고 사과 한번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억울함이 억울함을 키우는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억울한 일은 당할 때도 차별적이지만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차별은 일어났다. 자기 언어로 억울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경찰이나 검찰 또는 민원 처리 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낯선 외계의 언어일 가능성이 컸다. 인권위에서도 법률에 따라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을 때 ‘각하’를 하게 되어 있는데, 이 단어 하나를 이해하는데도 큰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변호인을 고용할 재력도, 인맥도 없는 사람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조차 어렵다. 나 역시 입만 열면 인권을 말하지만 ‘약자답게’ 조용하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감사할 줄 아는 민원인을 우대했고 도움을 받는 처지에 목소리 높여 권리를 주장하면 ‘악성’ 민원인이나 무례한 사람으로 분류시키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동안 만났던 많은 진정인은 내게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사실 별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도 그들은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욕을 뒤집어써도 모자랄 판에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도움을 주는 척, 애쓰는 척, 교묘히 빠져나갈 구멍을 잘 파 놓은 ‘베테랑’ 조사관의 위선적 성공을 뜻했다. 위선을 감추기 위해 사건이 많다는 핑계를 댔고, 자주 피진정인이나 법의 한계를 탓했다.


이런 악순환을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는 없을까? 누군가 억울한 일로 잠 못 이룰 때, 무작정 고소하거나 유명 변호사를 찾아가 많은 돈을 내고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국가 예산으로 억울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다양한 절차들을 잘 활용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가기관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은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제 절차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랑스 중등 교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은 ‘노동권'이라고 한다. 법률적 권리나 의무를 가르치는 것 외에도 노동자로서 피해를 당했을 때 구제 절차를 이용하는 방법, 나아가 노조에 가입하는 방법과 노조 활동 중에 단체교섭의 기술을 미리 배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노동자로 산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얼마나 타당하고 당연한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납세자로서, 시민으로서 국가의 보호를 요구하는 방법을 의무교육 기간에 배울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이런 마음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작은 스피커 하나 연결하고 싶었다. 그 웅크린 말들이 세상에 작게 울려 퍼질 수 있기를 바랐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에는 뜻밖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낯선 빵집 주인이 내주는 롤빵 몇 개에 깊은 위로를 받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부부가 아들을 잃었다는 말에 빵집 주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써 부부를 위로한다. “갓 구운 빵이라도 좀 드렸으면 싶은데, 드시고 살아내셔야죠. 이럴 땐 먹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거든요.” 오븐에서 갓 꺼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피 롤빵과 커피를 마시며, 새벽이 될 때까지 빵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부부는 잠깐이나마 아이 잃은 통절한 슬픔에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글이 빵집 주인이 내주는 따끈한 롤빵 하나만큼의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글을 쓰는 내내 겨울방학 끝나는 날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는 기분이었다. 날씨가 어땠는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음은 슬펐는지 즐거웠는지, 오래된 기억을 불러냈다. 어느 기억은 올이 풀린 스웨터처럼 하나를 당기면 줄줄이 풀려나왔고 어떤 것은 봉인된 뚜껑을 억지로 열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왔던 이미지들이 말하기를 기다렸고 그 이미지를 따라가다 만난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밀린 일기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참 후련하다. 물론 밀린 일기 다음에 해야 하는 진짜 숙제들이 널브러져 있는 책상을 곧 다시 마주해야 하겠지만.


삐뽀삐뽀 119’ 같은 초보 부모를 위한 육아서처럼, 언제나 사는 일에는 초보일 수밖에 없는 조금 슬프고, 귀여운 우리를 위한 ‘마음 챙김서 되었으면 좋겠다. 여름 새벽, 가을 냄새가 살짝 스쳐 지나가듯, 글을 읽는 사이 작은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해준다면,  행복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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