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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Feb 27. 2023

손님과 달밤과 소원

부모님은 오래전 작은 식당을 운영했었어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시작해서 막내 동생이 대학을 입학할 즈음 은퇴를 하셨죠. 엄마는 그 시절을 얘기를 할 때 늘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때 내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몰라야, 비슷한 규모의 식당에서 여러 명 일하는 사람을 부릴 때도 우리는 한 번도 사람을 쓴 적이 없었다. 하루에 몇백 명 손님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설거지가 네 아빠 키보다 높게 쌓이더라 “ 묵지근한 고생담으로 시작된 엄마의 이야기는 그래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로 마무리되곤 했어요. “그렇게 일하면서도 돈 벌고 자식들 키우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야” 우리 부모에게 그 시절의 고생은 고통이 아니라 삶을 살아 낸 용기와 자부심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식당을 하시던 시절은 영업시간이라는 것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주인장의 성실한 만큼, 가능한 일찍 열고 가능한 늦게까지 영업을 했던 시절이었어요. 우리 식당뿐 아니라 다른 상가들도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주말도 없이 영업을 했죠. 아무리 늦어도 마지막 손님이 테이블에 남아 있으면 영업시간은 무작정 길어지는 시스템인 거죠. 부모님도 그런 식으로 일을 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절대로 가게 문을 닫는 법이 없었지요. 도대체 그 당시 엄마아빠는 주에 몇 시간씩 노동을 했었던 걸까요? 쉼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경제적으로 절박하기 했기 때문에 자신의 시간과 근력을 갉아 넣어 일을 했을 거예요.


그래도 부모님의 경우는 운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번성했고, 식당을 운영하던 상가가 전세도 월세도 아닌 자신들의 것이었으니까요.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고 말할 만큼 수입이 유지되었던 거죠. 젊어서 고생은 하셨지만 육십 전에 은퇴하여 노후는 나름 편안하게 생활하실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상가에서 장사를 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월세내면서 자영업을 했다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을 거예요.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엄마아빠가 식당을 말끔히 청소한 후 집으로 돌아올 때 그날 번 현금을 들고 왔어요. 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재미난 이야기 아닌가요? 그때는 누구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현금을 냈어요. 당장에 돈이 없다면 ‘외상’을 하면 했지 보이지 않는 돈인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을 없었죠. 그래서 자영업자이면 하루 영업을 마치고 나서, 돈계산을 해야 하는 거예요.


어느 날, 부모님이 돈계산을 미처 하지 못한 탓인지 ‘돈통’을 그대로 들고 오기도 했어요. 쇠로 된 통의 뚜껑을 열면 ‘띠링’ 하는 소리가 났던 것 같아요. 돈통에 얼마큼 돈이 차있는지를 보면 그날의 영업 실적을 금방 알 수 있는 거죠. 지폐를 꺼내서 천 원권, 오천 원권, 만 원권 별로 구별해서 열 장씩 맞춰 방바닥에 쌓아 놓는 게 나의 임무였지요.


가족이 늦은 저녁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창밖에서 내 이름을 불러요. 그러면 엄마는 돈가방에서 돈을 꺼내 문 밖으로 나갔죠. 2층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엄마가 아주머니에게 돈을 건네주는 걸 볼 수 있었어요. 나는 그 아주머니가 정말 미웠어요.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을 매일 가져가니까요. 그 밤들의 돈거래가 곗돈이었다는 건 아주아주 나중에 이해했어요. 내가 미워하던 아주머니는 계주였고 엄마는 빠른 번호를 받아 곗돈을 타서 목돈을 마련했기 때문에 더 길게, 더 많이 곗돈을 내야 했다는 것도요. 그 시절 내가 무언가 사달라고 하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했어요. “이번 계만 끝나면 사줄게” 나는 그 말이 싫어서, 계가 뭔지도 모르면서 어른이 되면 절대 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죠. 그리고 달을 보며 기도를 했어요. “엄마의 계가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부모님이 빨리 귀가하길 바라면서 이런 기도도 했을 거예요. “마지막 손님이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이제와 생각하니, 달밤에 했던 나의 소원들은 오래전 모두 성취된 것 같아요. 계모임은 끝났고, 손님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니까요. 그 소원을 성취되는 사이에 폭풍처럼 지나갔을 부모님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때 달님에게 더 귀중한 것을 빌었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폭풍처럼 지나간 부모님의 시간을 달이 차오르는 것처럼 다시 채워 달라는 소원 같은 것 말이에요. 창을 열고 달을 찾아봅니다. 뒤늦게 마나 소원을 다시 빌고 싶어서요. 그러나 오늘 밤은 많이 춥고, 달님은 보이지 않네요. 그저 찬바람만 쌩쌩 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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