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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Jun 13. 2023

좋은 감정을 포착하는 방법

마이너스 감정과 플러스 감정

괜찮다는 기분은 마음을 활짝 열어 두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 같다. 예를 들어 부러움이나 시기심, 불안감 같은 감정은 삽시간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 주인이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밀물처럼 밀려와서는 마음속을 차가운 바닷물로 채워 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괜찮다는 기분은 미세한 진동과 같아서 멈춰서 살피지 않으면 그 떨림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치기 쉽다. 좋은 기분상태를 아깝게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감정의 이런 차이를 아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이너스의 감정은 쉽게 느껴지지만, 플러스의 감정은 쉽게 느끼기 어렵다.


밤에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하루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데자뷔를 경험하는 것처럼 어제와 그제와 같은 하루가 그저 나를 관통해 지나간 듯, 글로 쓸만한 일들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어제 쓴 글에 날짜를 오늘로 바꾼다고 해도 크게 틀린 내용이 없을 것 같은 것이다. 하루를 꽉 붙잡느라 손목이 시릴 지경인데 손바닥을 펴보니 아무것도 없는 빈손인 것이다.


언제부터 나는 그래서 하루를 아주 잘게 잘게 소분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루는 어떤 완성된 서사가 있는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처럼 펼쳐지지 않는다. 하루는 의미가 서로 다른 순간들이 연속되는 것인데 우리가 임의로 24시간이란 틀에 담아 놓을 뿐이고, 틀에 담긴 하루는 납작해져서 모습이 왜곡된다. 제 모습을 회복시키려면 하루라는 풍선에 바람을 불러 넣어 순간을 입체화시켜야 한다. 볼품없이납작해진 하루에서 괜찮은 순간을 드러나는데는 많은 양의 공기가 필요하다.


오늘 내가 입체화시킨 하루에서 찾아낸 괜찮은 순간은 이것이다. 오후 5시에 친구 윤과 만나 숲에서 맨발 걷기를 했다. 나무그루터기에 앉아서 산들바람을 타고 온 밤꽃 향을 맡았다. 맨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숲의 흙은 서늘하고 한없이 보드랍다. 윤이 일구는 텃밭까지 걸어가서 미나리와 상추를 뜯었다. 루꼴라는 웃자라서 흰색과 보라색이 섞인 작은 꽃을 피웠다. 꽃 아래 달린 루꼴라를 따다가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 나의 루꼴라, 루꼴라” 이상한 내 노래를 윤이 듣고 따라 부르며 웃었다.


채소밭 옆에 작게 만든 꽃밭에서 샛노란 금계국과 밝은 노랑의 달맞이꽃이 가득 피었는데, 벌과 나비만큼이나 텃밭 앞을 지나가는 산책자들을 붙잡았다. “너무 예쁜데, 사진 찍어드릴까요?” 꽃밭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보고 지나가던 노인 두 분이 갑자기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나섰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핸드폰 사진 앱을 열어 노인에게 주었다. 웃어 보세요. 아이고, 어쩜 이리 예쁠까. 꽃에게 하는 말인지 우리에게 하는 말인지 상관없이 예쁘다는 말이 참 좋았다. 밤꽃 향과 금계국, 달맞이꽃과 루꼴라 꽃, 그리고 분홍 셔츠를 입은 나와 하늘색 셔츠를 입은 윤. 우리는 초록의 숲과 색색의 꽃들과 아주 잘 어울렸다. 노인이 찍어 준 사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운 좋게 괜찮다고 느껴졌던 순간이 사진으로 포착되어 분명해졌지만 제 아무리 엉망으로 보낸 날에서도 괜찮은 순간은 들어있다고 믿어야 한다. 괜찮다는 기분은 발견되는 것이기보다 발굴되는 감정에 가까운 것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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