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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May 13. 2024

새벽 기상이 노화라고?

미라클 모닝

내게 어른이란 알람 없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을 뜻한다. 이십 대부터 직장생활을 했으니, 새벽기상이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겨우 일어나는 나는 스스로 어른답다고 느낄 수가 없다.


작은 도시에서 자영업을 하시던 우리 부모님이 평생 알람시계를 사용하는 걸 보지 못했다.  아침의 새들처럼 동이 트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저녁밥을 먹고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부모로부터 새벽형 인간유전자를 물려받은 남동생과 달리 나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도 소문난 잠꾸러기였다. (주말 아침마다 동네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불러내 체조와 마을 청소를 시켰는데, 늦잠을 자는 나는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엄마표 알람시계에 맞춰 일어날 수 있었으므로 '정상적'인 등교가 가능했지만, 엄마표 알람을 이용할 수 없던 대학시절에는 오전 강의는 거의 듣지 못했다.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한 것은 순전히 시대를 잘 만난 덕분이다) 대학 1학년 때,  내 별명이 자휴협 회장이라는 사실은 한 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 알았다. 자휴협은 자체휴강협의회의 회장이란 뜻이다.  오전 수업을 셀프 휴강하는 용감한 신입생에게 주어진 직책이었다. 평생 별별 요란한 소음을 내는 알람 시계를 다 사용해 봤지만, 효과를 본 적이 없다. 그중 작년 가을에 구입한 빛 알람시계도 있다. 예약된 시간에 맞춰, 마치 해가 천천히 떠오르는 것처럼 시계의 둥근 테두리에 조명이 켜지면서 점점 빛이 더 강해진다. 빛에 반응하는 생체리듬에 착안한 알람시계인데, 내게는 큰 효과가 없었다.  


이런 나의 아침잠 신체리듬을 생각할 때,  30년 가까이 출퇴근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어깨를 으쓱하며  "나는 평생 예뻤고, 죽을 때까지 예쁠 거다"라고 하던데, 나는 평생 늦잠을 잤고, 죽을 때까지 늦잠을 잘 잘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올봄, 내 바이오 리듬에 큰 변화가 왔다. 6시도 안 돼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저절로 떠지는 것이다.  하루이틀 그럴 수 있다 생각했는데, 수개월 째 비슷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신기하고 스스로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다. 이제 나도 철이 좀 든,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인가! 어쩌면 체력이 좋아진 걸까?


일요일 아침에도 6시경 눈이 떠졌다. 아무 약속도 없는 주말 아침의 새벽 공기를 마셔본 것인 언제인지.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일지 몰라도 내게는 놀라운 현상이고, 아주 설레고 기분이 좋은 일이다. 아침형 인간인 남편은 벌써 일어나 이미 샤워를 마치고,  커피를 내리는 중이었다. "여보 나 체력이 엄청 좋아진 것 같아.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눈이 번쩍번쩍 떠진다니까. 미라클 모닝이야! “ 남편은 아주 잠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더니 커피콩을 핸드밀로 드륵드륵 갈면서  말했다.  


“미라클 모닝 아니라 노화현상... " 사랑인 줄 알았더니, 부정맥이었다고 하더니, 체력 좋아진 게 아니라 갱년기 노화현상이라니…”나이 들면 잠부터 줄어. 우리 아버지 정말 일찍 일어나셨잖아" 구십에 돌아가신 시아버지 생각하니,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말에 금세 수긍이 가긴 했다. 우리 시아버지는 새벽 4시면 일어나셔서 기침을 하셨지. 어른이 되자마자 노인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인가. 그래도 나는, 아침잠이 사라져 새벽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노화 현상이라도 양팔 벌려 환영할만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오후에 친구가 꽃사진을 잔뜩 카톡방에 올렸다. 새벽 산책을 다녀오는 길인데,  아재들처럼(?) 꽃사진을 찍고 있더라고 하면서. 너도 나도 꽃 사진 찍을 나이지,라며 하소연을 하다가, 결론은 내일 아침, 출근 전에 을지로에 모여 커피 한잔 하자는 것이다.  친구들, 너희들 원래 아침잠 없었던 거니? 나이 들어 변한 거니?  요즘 내가 좀 아침형 인간으로 태어나는 '갱년‘의 시절을 보내고 있으나, 그래도 월요일 아침 을지로에서 커피 마시고 출근할 정도의 아침형 인간을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아직 밤 10시도 안 되었는데, 왜 이렇게 졸린 건가? 아침잠이 줄어든 만큼 밤잠이 길어지는 것, 지랄 총량의 법칙처럼 총량 차원에서는 모든 것이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인가. 평생 잘 수 있는 총량의 아침잠을 다 채웠다면, 갱년기를 맞아 새벽을 누리고, 밤잠을 길게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친구에게 내가 아침형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라고 했더니, 답장을 보내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잡혀 먹힌대 ‘ 어딘가 이상해 생각해 보니, 일찍 일어난 벌레가 일찍 일어난 새에게 잡혀 먹는다,를 헷갈렸나 보다.


아무튼, 일찍 일어난다고 모든 존재에게 다 이로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겠지. 갱년 하여 아침잠이 없어진 중년의 인간이 앞으로 새의 입장에 서게 될지 애벌레의 처지에 될지 모르겠지만, 일찍 일어나면 일찍 졸리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나보다 2시간 먼저 기상한 남편은 어느새 소파에서 누워 코를 골고 있다.


(월요일 아침, 변함없이 6시에 눈이 떠졌다. 덕분에 어젯밤 졸려서 마무리 못했던 이 글을 마무리! 아침잠 없어지는 것, 노화현상 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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