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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어리 May 15. 2024

제 MBTI요? 몰라도 우리 대화할 수 있어요.

우리는 성격 이상의 인격체다.


MBTI로 시작하는 대화


최근 날씨도 좋아지고 여유가 생겨 여러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모임이었기에 대화의 물꼬를 틀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예외 없이 모든 모임에서 MBTI가 사용되었다. 16가지나 되는 유형에 사람들의 기본적인 이해가 깔려있기도 하고 친밀감을 느끼기에도 좋은 주제이다. 오히려 모임의 주제가 MBTI를 통해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인 경우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는 증거


나는 나의 MBTI를 정확히 모른다. 중, 고등학교 시절 MBTI 테스트를 학교에서 실시했다. 그리고 그 두 번의 테스트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유행으로 인해 한 번 더 테스트를 하게 됐다. 진지하게 임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번엔 다른 결과가 나왔고 거의 다 반반인 결과였다.


MBTI가 한창 유행하던 때에 나는 이 현상이 너무 좋았다. 코로나 시절 모두가 집에 갇힌 상태에서 인터넷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싸우는 중이었다. 그 가운데 MBTI의 유행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듯싶었다. ‘너는 ~유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는 둥, ‘나는 ~유형이라 이런 부분이 약해’라는 둥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모두에게 각인시켜주었다. 그래서 상당 부분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었다.


16개의 분류로 사람을 나누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그 또한 좋게 보였다. 극단화된 사회에서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16 유형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나는 그곳이 천국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은 수년이 흘렀다.


나의 생각은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틀린 부분도 많았다.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구분 지어 보게 되는 건 맞았지만 그것이 타인에 대한 이해심을 높일 것이라는 예상은 틀렸다. 오히려 자신과 맞는 유형의 사람들을 곁에 두기 시작했고 더 많이 배척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특정 성격 유형에 대한 혐오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유형은 채용하면 안 돼.’ 라든가 ‘~유형이시죠? 괜찮아요~’라는 식이었다. 돈, 외모, 학벌 등을 넘어서 성격에까지 계급과 혐오가 생겼다. 아마 성공한 부자 ‘누구’가 어떤 유형의 성격이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 같다. 역시 예측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나는 MBTI가 싫어요!!


지금의 나는 MBTI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MBTI는 오히려 관계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해를 위한 MBTI가 모이는 사람들과 맞는 사람들을 미리 결정해 버린다. 실제로 특정 모임에서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모임이 끝날 때까지 MBTI를 공개하지 않은 것을 원칙으로 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떤 성격유형이라고 하는 미명하에 사람과 사람이 대화할 때 지켜야 할 규칙들을 묵살해 버린다. 초등학교 때 ‘바른 생활‘ 또는 ’슬기로운 생활‘ 등에서 대화법에 대해 배웠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감정을 잘 살피고 공감하고 적절히 반응해 주며 상황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 나는 특정 유형의 성격이라 그런 건 못해 ‘라는 식의 태도가 나오는 듯하다. 웃기게 표현할 수 있기에 밈으로 자주 소비되는 유형이기도 하나 실제 상황이라면 대화는 이어지기 힘들다.


또한 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도 하며 반박하기도 하는 적절한 소통과 토론이 사라져 가고 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의 유형을 알아내고 그로 인해 그를 변하지 않는 무언가로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설득과 소통, 조율의 과정이 사라진다. 깊어지려 하면 성격 유형을 떠올리고 그에 맞춰 대화를 포기한다. ’ 당신은 ~라서 이렇게 생각하는군요. 저는 -라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린 성격이 달라서 생각이 다르네요.‘라는 식이다. 성격이 다르기에 생각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따라서 나는 MBTI가 싫어져버렸다.



그래도 우리 대화할 수 있어요.


지금의 나는 MBTI를 물어보면 ’다 반반이에요 ‘라거나 ’잘 몰라요 ‘라고 대답한다. 때에 따라 그냥 내 맘대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항상 ‘말씀하시는 것 보면 ~같아요.’ 혹은 ‘~씨는 그 유형 아닌 거 같은데?’, ‘~유형 치고는 - 잘하시네요.’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온다. 가볍게 즐기는 유행을 꼬아서 보고 싶지 않지만 대화와 생각의 공유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아쉬움이 든다. 요즘은 MBTI가 하루빨리 별자리나 혈액형 수준으로 권위가 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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