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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어리 Aug 10. 2024

기록에 대한 기록

김광균 시인의 [대장간의 유혹]을 읽고.


대장간의 유혹 - 김광균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뀌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생각이 부유한다. 나의 생각은 너무나 가벼워서 머물러있지 않는다. 하나의 생각과 그다음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멈추지 않고 돌아다닌다. 때에 따라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런 나이기에 기록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쉽지 않다. 기록을 시작함에 있어서도 무엇을 먼저 기록할 것인지, 어디에 기록할 것인지 등등 사소한 생각의 부유물들이 내 머릿속을 탁하게 한다. 그리고 시간을 앗아간다.


일단 적은 기록을 가지고 수정해 나가는 작업 또한 힘에 부친다. 힘겹게 사투하며 적은 글의 상당한 부분을 지우게 되었을 때, 연결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 하고자 하는 말의 명료함이 떨어질 때 좌절감을 느끼며 수정을 한다. 그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어찌 보면 기록에 대해 생각했던 오늘 하루가 나에게는 인생에 대해 생각한 하루와 닮아있는 듯 다가온다. 해야 할걸 알면서 하지 못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해 냈을 때, 성취감에 취해있을 겨를 없이 다시 좌절감을 느끼며 다시 수정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반드시 요구되는 일의 지속성까지.


좋은 글을 적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남겨두고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며 그 당시를 회고했을 때, 내가 했던 생각들에 감탄하는 글 혹은 여운이 느껴지는 글을 적고 싶다.


글을 적는 행위 자체가 무슨 특별한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적는 것조차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상에 매일 앉아 있다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다. ‘생각’을 하며 공부해야 하듯이 깊은 사유를 하며 좋은 글을, 확장되는 글을 적으려는 투쟁을 하며 적어야 한다. 나는 그런 글을 적고 싶다.


글을 적는 나와 글을 읽는 미래의 나 혹은 타인. 나의 생산물을 소비하는 데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그 찰나의 시간들이 똥덩어리처럼 떨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대장장이 앞에서 벼려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과한 바람이라면 최소한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글이었으면 한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기록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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