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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정 Jun 25. 2023

공포의 육아상담

맞으며 자랐지만, 때리지 마라.

저렴한 비용으로 내 잘못 지적받기

나는 몇 달 전부터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육아상담을 받고 있다. 전액 무료는 아니고 상담비의 일부를 지원받아서 저렴한 비용으로 하고 있다. 

처음 상담을 갔을 때, 꽤나 개인적인 것들을 물어보셔서 놀랐다. 그저 육아에 대한 궁금증들을 물어보고 답변받는 식의 상담일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심리상담이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양육자(주로 엄마)의 상태가 편안해야 아이들도 편안해진다며, 양육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문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유년기 시절 힘들었던 일들과 성인기, 그리고 결혼 후의 일들까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MMPI나 그림 검사 같은 것도 실시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상담 끝에 선생님께서는 내게 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여느 육아 상담 프로그램이 그러하듯이

결국은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아이에게서 문제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문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전문가의 입에서 듣지 않아도 스스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문가의 입에서 이 말을 들은 이상, 해결책은 나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주로 듣는 솔루션은 '내려놓기 - 애쓰지 않기'이다. 

이 솔루션을 이끌어 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킥보드를 사 주었다.
2. 아이에게 킥보드를 가르쳐 주었다.
3. 아이는 언니, 오빠들의 잘 타는 모습을 보고 금방 풀이 죽어 포기해 버렸다.
4. 나는 아이에게 킥보드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다른 종류의 과제를 제시했다. (= 자전거)
5. 아이는 자전거 페달을 1분 정도 시도해 보고 다시 포기했다.
6. 나는 자전거보다 더 쉬운 과제를 제시해 보기로 했다. (= 밸런스 바이크)
7. 아이는 역시나 1분 정도 시도해 보고 포기했다. 
8. 나는 아이가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에게 실패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아이의 끈기와 인내심 부족이 걱정되어 상담사님께 어떻게 하면 끈기를 길러줄 수 있을지를 여쭤보았고, 상담사님은 내게 '애써 실패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라고 했다. 그 말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나는 아이가 신체활동을 통해 끈기와 성취감을 획득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 수준에 맞을까 싶은 다양한 놀잇감을 찾아서 제시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그것이 열심히 실패할 거리를 물어다준 격이었다라니. 상담사님은 내가 굉장히 극성스러운 엄마인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난 그냥 여느 엄마들처럼 그 나잇대에 맞는 신체활동거리를 사다 준 것뿐이었다. 우리 아이가 신체 능력이 좀 떨어지는 아이 었을 뿐. 그런데 나는 한동안 상담사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아 헤어 나오지 못했다. 


너는 맞고 컸어도 네 아이는 때리지 마

'배고픈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빵을 뺏은 건 너잖아.'라는 답변을 들은 느낌이랄까. 

육아 상담은 늘 그런 식이 었다. 

아이가 잠을 안 자요
 > 잠을 왜 일찍 자야 해요?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야 하는 건 엄마 위주의 생각 아닌가요? 
아이가 아빠를 거부해요
 > 엄마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뭐든 다 내 탓, 내 책임이었다. 그래서 내가 바뀌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3n년 동안 정신과 육체의 습관이 굳은살처럼 박히도록 살아온 인간이고, 더군다나 내 부모에게 사랑도 단호한 훈육도 받아본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 물론 육아상담에서 나의 유년기 시절을 돌아보고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상처받은 아이를 다뤄주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어떻게 충분할 수 있겠나. 더군다나 나는 그 문제들로 인해 심한 우울증과 불안증을 가지고 있고 10여 년이 넘도록 약을 복용해도 쉬이 낫지를 않고 있을 정도인데 상담 몇 번으로 나아질 리가 만무하다. 배운 적이 없는 사랑을 베풀라 하고, 들어본 적이 없는 훈육을 가르치라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게다가 나처럼 강박적인 인간에게 '내려놓으라'니. 임신과 출산이 나의 신체를 180도 바꿔 놓았다면, 육아는 나의 정신을 180도 바꿔놓는(놓아야만 하는) 경험인 것 같다. 나 자신을 깨부숴서 '엄마'라는 존재로 다시 조립해야만 하는 이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슬프다. 


상담의 빛과 그림자
내가 이 상담에서 얻은 것은... 
- 불행했던 과거지사에 대한 위로
- 나를 '그릇되게' 지키는 강박적 사고와 마주 보기
-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내려놓고 행동하기

지금까지는 이 정도인 것 같다. 사실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육아를 할 수 있겠지. 

상담을 받으며 힘들었던 것은...
- 무엇이든 다 내 탓이라는 것
- 내가 바뀌어야만 아이가 바뀔 것이라는 것
- 남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

변화는 나에게 너무나 힘든 개념이다. 내 주변이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 할수록 나는 변화되어야만 한다. 

* 변화 방법
게으른 나 >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 > 나답지 않기 위한 원칙 수립 > 스트레스 발생
> 육아 고충 발생! > 나답게 살도록 내려놓기, 애쓰지 않기 >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 > 노 스트레스 > 육아 고충 감소!


상담을 받는 날은 아이와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내려놓으라는 상담사님의 말대로, 아이에 대한 기대와 '육아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강박을 내려놓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 '애쓴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 애쓰느라 에너지는 점점 소멸되어 가고,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 간다. 아이가 어린이집도 가지 않는 주말이 되면 스트레스는 정점을 찍는다. 그래서 꼭 남편과도 싸우게 된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생긴 새로운 한 주간의 패턴이다. 이 한 사이클을 반복하고 나면 다시 우울이 나를 덮치고 무기력해진다. 

언제까지 이 상담을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아지면? 나아지고 있기는 한 걸까? 아니면 계속 도돌이표라서 중단? 어떤 이유로 종결이 되든 언젠가는 이 상담도 끝이 날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엄마, 

애쓰지 않는 엄마,

자신의 모습 그대로 육아하는 엄마,

그러면서 불안하지 않고, 행복한 엄마...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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