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남 실패]
너를 임신하고 아직 성별을 알지 못했을 때 내심 아들이었기를 하고 바랐다. 남아선호사상 따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란다. 내가 살아본 여자로서의 인생이 그다지 추천할만한 경험이 아니었어서 그랬던 거지. 하다못해 추운 겨울 더러운 공중 화장실의 좌변기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소변을 봐야 할 때도 너를 생각하며, 너 또한 평생 이 짓을 해야 한다니 슬펐다.
어디 그깟 좌변기뿐이겠니. 여자라서 슬픈 일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써 내릴 수도 없어. 이 글을 읽을 때쯤의 네 나이라면 내 말을 공감할 만큼 슬픈 경험들이 충분히 쌓였겠지.
[딩크 실패]
딸인 너에게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는 말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 있다면 그건 내가 아예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는 말일 거야. 아이들을 딱히 예뻐하는 편도 아니고 뭣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였으니까. 네 아빠와 결혼할 때 즈음 자녀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지. 나는 강경하게 아이를 낳기 힘들다는 입장이었고, 네 아빠는 그건 결혼해서 생활하면서 차차 생각해 보자는 입장이었어. 그때는 몰랐다. 몇 가지의 일들은 결혼 전에 무조건 확답을 받고 넘어가야 한다는 걸. 찜찜하지만 그러자고 했고 나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 출산의 급물살에 올라타야만 했다.
[자궁을 품고 산다는 것]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가에 인사차 들렀을 때의 일이야. 신혼여행 잘 다녀왔냐는 덕담과 함께 허니문 베이비를 기대하시는 너희 조부모님께 나는 눈치 없이 신혼여행을 무사히 즐기려 피임약을 복용해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네 할머니께서 피임약은 몸에도 안 좋으니 다시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어. 신혼여행 다녀온 첫날이기도 하고 해선지 그때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 후로 머지않아 나는 갖가지 시집살이에 시달려야 했어.
사실 이건 너무나 명확하게 예견된 일이었어. 너와 네 아빠는 반대하는 결혼을 했거든. 반대하는 것은 물론 아빠 쪽 부모님이었다. 나의 몇 가지 조건들을 트집 잡아 아빠와의 결혼을 반대하셨어. 뭐, 나도 이제 부모가 되어보니 반대하는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도 전혀 이해 못 한 것은 아니었어. 오랜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몸도 마음도 비실비실한 게 어른들 눈에는 더 잘 보였을 테니 반대하실 만도 하다고 생각했지.
반대하는 마음을 이해는 했지만, 그 반대 때문에 나오는 행동들 중엔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몇 가지 있었어. 퇴근시간이 아직 가깝지도 않은 오후에 불쑥 직장 근처에 찾아와 잠깐만 나오라고 하셔서는 왜 반대를 하시는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아이를 낳기 힘들 거라는 둥, 낳더라도 나이가 많아서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는 둥 악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아주 고상한 말투로 차근차근 퍼붓고 가신 일이라든지. 인상이 좋아 보이려고 방긋방긋 웃어 보였더니 네 아빠를 통해 들려온 이야기라곤 부모가 교정도 안 해줘서 치열이 고르지 않다는 비난 어린 반응이라든지. (너는 평생 나의 덧니를 본 적이 없지. 그때 이후로 발치해 버렸거든.) 이 외에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 친절한 언니들이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결혼 뜯어말릴 거라는 댓글을 받을만한 일들이 아주 많이 있었단다.
결혼 전부터 그랬으니 결혼 후에는 어땠겠니. 그분들 눈에는 내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자궁덩어리로 보였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아이를 별로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시면 아마 나를 천하의 이기적이고 재수 없는 인간으로 보실지도 몰라. 지금 네 동생을 낳지 않는다는 이유로 날 조금은 그렇게 보시고 계실 거거든. 외동으로 자랄 자식의 외로움은 생각지 않고 육아의 괴로움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 그게 네 할머니가 보시는 이 엄마의 실체다. 나는 빨리 완경을 하고 자유로워지고 싶구나. 완경을 하면 하는 대로 또 다른 여성질환에 시달리겠지만, '생산능력이 있는 자궁을 달고 있으면서도 출산하지 않음'을 죄악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완경을 선호할 수밖에 없겠다.
[딩크 실패와 그 후]
결론적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네가 있으니, 나는 딩크에 실패했다. 아주 적극적으로 실패했지. 너를 갖기 위해 난임병원을 다니며 시험관 시술까지 받았으니 말이야. 첫 번째 시도에 성공한 임신은 유산으로 끝을 맺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자궁이 내 몸을 얼마나 지배하는 지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인위적인 호르몬 주입으로 자궁에 자극을 주면, 자극받은 자궁으로 인해 전신이 반응을 하고, 신체컨디션은 물론 정신적인 컨디션도 불안정해졌었어. 그때 찌기 시작한 살은 임신 때 탄력 받고 출산 후 차곡차곡 쌓여 20kg를 넘어섰다. 이젠 체질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지. 내 삶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결국 너를 자연임신으로 갖게 된 걸 생각하면 좀 많이 억울하게 됐어.
딩크를 실패하게 된, 그러니까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먹게 된 건 신혼살림을 옮기고 나서야. 신혼살림을 시가에서부터 얼마간 떨어진 곳으로 옮기고 왕래를 아예 끊고 지냈더니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한동안 안정감이 충만한 시기가 찾아왔어. 마음이 편해지면 아이가 생긴다는 건 정말 전설과도 같은 진리인가 봐. 내 온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가 너를 임신하기 직전, 그리고 임신한 기간이란다. 임신 기간 동안은 정신과 약을 단 한 알도 먹지 않았는데 공황발작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어. 네가 건강하게 태어날 지에 대한 걱정 외에는 실체 없고 막연한 불안 같은 것은 좀처럼 날 괴롭히지 못했다. 온통 너에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예정일을 하루 지나 아주 건강하게 태어난 너를 보며 엄마, 아빠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환희를 느낄 수 있었어. 아주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감정이었고 두 번 다시 느껴 볼 수 없을 감정이었어.
그리고 몇 달 지나, 임신하면서 끊었던 우울증 약을 다시 먹게 된다. 이번 병명은 '산후우울증'이야.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