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육아를 결심한 아내에게
결혼을 하고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공이 필요합니다. 마냥 행복한 장밋빛 미래를 그려 보지만 삶이 늘 그렇듯 생존을 위한 투쟁의 시간은 늘 행복한 순간보다 깁니다. 그 투쟁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마주 보는 배우자의 모습에서 안정과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또 다른 전쟁으로 번져가는 일은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생물로서의 절대적인 생존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너무나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사회적 생존은 날마다 험난해지고 있습니다. 평범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으며 나의 사회적 가치는 매일 떨어집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으로 생존하기 위해 날마다 지옥 같은 지하철에 두 세 시간씩 육신을 싣고 다니는 현대인들에게 결혼도 연애도 사치일 수 있습니다. N포 세대라는 자기 비하에 가까운 어휘는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현재를 지키기 급급한 세태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비혼과 딩크 같은 문화가 확산되어 가는 세태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와 타인의 삶을 손쉽게 비용으로 환산하고, 인격보다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규모와 어떤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보여주는 명함만으로 어렵지 않게 서열화하고 판단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가정을 이루는 일은 부자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는 과도하게 높아지는 혼인비용이니 점점 어려워지는 내 집 마련, 높아지는 혼인연령으로 어려워지는 출산과 출산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문제까지 가정을 이루는 모든 과정을 개개인이 감당하기 벅찬 비용으로 묘사합니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말라는 경고는 곳곳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이제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상당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찰스 다윈이 30세 때 쓴 일기에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한 글이 적혀 있다는 것을 보면 결혼을 결심한다는 게 예전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의 아내는 그 어려운 일은 기꺼이 나와 함께 하기로 결정해 주었습니다. 두 성인이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성인이 함께 생명을 탄생시키고 온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길러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나의 아내는 우리 앞에 닥친 현실적인 조건들을 따지기 보다 비록 고난(?)의 길이라도 함께 가는 쪽을 선택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감당해야 할 비용에 대한 고민보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하고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우리의 모습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닥칠 문제와 어려움을 비용을 보지 않고 가정을 이뤄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해 주었습니다. 그 결정이 우리 부부에게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보물로 돌아왔습니다. 비용 - 편익 분석으로 절대 계산할 수 없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행복감은 아내의 담대한 결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를 갖겠다는 아내의 결정이 만들어 준 지금의 행복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나눠보고 싶습니다. 건강한 부모로서 살아가겠다는 나의 다짐과 건강한 아이가 어떻게 부모의 삶을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면이 단단하고 사고가 유연하며 이웃에게 따듯한 아이를 키워나가는 가정을 만들고 싶은 분들과 이 이야기들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