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은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우리 아이가 아내의 태중에 들어간 일은 시작부터 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부부생활을 하고 피임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될 줄 알았습니다. 순진한 생각이었죠. 결혼했을 때 제 나이가 서른일곱, 아내의 나이가 서른셋이었고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 적극적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가 제 나이 마흔, 아내의 나이는 서른여섯이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고 다니던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러 동분서주할 때마다 딱히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능은 한데... 왜 이렇게 늦게 준비하셨어요?" 이런 뉘앙스의 얘기를 아주 친절하게 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 덕분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이미 많이 늦으셨어요."라는 대사들이 꽤나 야박하게 들렸습니다. 아내의 건강 상태 때문에 꾸준히 다니는 병원의 교수님은 "꼭 아이가 있어야 해요?"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겉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삶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을 해도 아이를 갖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난임 병원을 매주 찾아갈 때마다 수많은 부부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 절박한 표정으로 병원을 찾는 게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의 과정도 뭐 하나 쉬운 게 없었습니다. 제 아내는 그 좋아하는 술도 딱 끊고 타이트하게 식단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임신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를 챙겨 먹고 과배란을 유도하기 위한 호르몬제를 투여하고 아내의 하루는 정말 고되 보였습니다. 원래 흡연은 하지 않았고 아내 이외의 사람과 하는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은 제가 포기했던 건 반신욕과 사우나 밖에 없었으니 참 불공평한 처사였죠. 아이를 갖기 위해 아내가 감당해야 한 것들의 무게와 제가 감당한 것들의 무게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한 달 남짓 시간이 지나고 첫 시험관 시술을 통해 우리 아이가 될 배아의 상태를 듣고 돌아오는 길 아내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병원에서 배아의 등급을 매겨서 보여주었고 그 등급이 5단계 중 4번째였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숫자 4등급이 아니라 excellent, good, normal, poor, awful로 구분된 등급의 poor를 받아서 더 충격이 컸습니다. 배아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펑펑 우는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거 다 병원 놈들이 나중에 잘 안되면 면피하려고 만들어 놓은 표야. 신경 쓸 필요 없어."라고 말하면서 생명이 꿈틀대는 배아 사진은 이미 우리 아이처럼 느껴졌는데 거기에 잔인한 등급을 매겨놓은 병원 놈들이 너무 미웠습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다음번 시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임신이 아내의 건강에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아내의 주치의 교수님이 했던 얘기도 신경 쓰이고 매일 호르몬제를 투여하고 식단을 유지하고 오로지 아이 하나만을 바라면서 절제하고 버티고 있는 아내를 지켜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배아를 이식하고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기다리는 매일 고민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이번 시술이 실패하면 다음 시술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혼자 운전하고 다닐 때마다 쉬었던 한숨을 모으면 한 겨울 난방에 필요한 가스로 충분할 정도였으니까요. 한참의 기다림이 지나고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했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임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을 때 저는 느꼈습니다. 우리 아이는 기적이고 그 어떤 아이보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아이라는 걸요. 이렇게 기적처럼 우리에게 와준 아이를 소중한 마음으로 지켜내겠다는 의지는 처음 발견한 샘물처럼 샘 솟아올랐습니다. 아내의 태중에 하나의 우주가 자리를 잡았고 그 우주가 얼마나 기적처럼 우리 곁에 왔는지 알고 있기에 차오르는 감정은 우리 부부를 어디든지 데리고 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와 우리 아이는 서로를 아끼고 지켜나가는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