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계획 없이 아주 이른 여름휴가를 썼는데 꽤 잘 보내는 중이다. 나는 오차 없는 J형 인간이라고 생각했기에 무턱대고 저지른 휴가 앞에서 당황할 것이란 걱정은 기우였다. 그렇다고 P형도 아니라 아주 약간의 계획은 필요하다. 커튼 설치하기, 보험처리 문의하기 등등 생각해 보면 할 일은 잔잔하게 많았다. 남자친구도 내가 휴가를 쓴다고 하니, 결혼 준비도 조금씩 하자며 같이 휴가를 써주었다. 심심하지 않은 휴가를 며칠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저녁 휴가 기간에 여행 비슷한 것 없이 보내는 게 좀 아쉬웠다. 그래서 무작정 근교 여행을 검색하다가 글램핑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캠핑이 좋냐고 물어 온다면 '글쎄'라는 답변이 나올 것 같다. 내가 쓰던 이불, 베개를 가져갈 수도 없고 무엇보다 집처럼 편하게 씻을 공간도 없는 캠핑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잡한 도심속 호캉스로 시간을 때우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었다. 이동이 쉬워야 했고 우리는 가벼운 짐만 가져갈 것이었다. 그런 조건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검색을 했고 편의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진 포천의 글램핑 장소를 발견했다. 작지만 아늑한 캠핑카 인테리어에 에스닉한 침구가 편하고 포근해보였다. 무엇보다 교통이 편리했다. 집 앞에 포천 시청으로 직행하는 광역버스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여기다!' 하면서 글램핑 1박 예약 버튼을 눌러버렸다.
평일 아침에 출근 지역과 정 반대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는 것 자체에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별 내용 없는 대화 몇 마디도 즐겁고 평범한 풍경 하나에도 새로움을 느꼈다. 포천 시청에 내려 근처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택시로 10분 거리에 있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 입구에 귀여운 강아지가 마중 나와있고 평일 낮 아무도 없는 한적함이 좋았다. 그때 알았다. 캠핑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이곳의 풍경에 이끌려서 왔구나. 벌써 한 여름이 시작된 듯 볕은 따가웠는데 이따금 부는 바람이 적당하게 시원했다. 그늘막 아래 캠핑의자에 앉아 숲의 풍경을 즐겼다. 해가 질 때쯤 장작에 고기를 굽고 밤에는 불멍을 하다 불씨가 사그라들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웠던 순간.
평소 같았으면 짧아도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 기차 여행 같은 일정을 계획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계획조차 버겁고 피곤해질 때가 있다. 일상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힘을 한 번 탁 놔버리는 것도 좋다. 그리고 잠시 찾아오는 공백을 기대감으로 살며시 채워보는 거다. 주어진 상황에 그냥 몸을 맡겨보고 싶을 때가 살면서 몇 번은 찾아오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재료는 도시와 정반대의 뷰를 보러 떠나고 싶은 마음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캠핑장이라는 타이틀보다 그곳의 풍경을 묘사하는 말들에 더 이끌렸나보다. '귀여운 강아지가 있는', '참나무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숲멍을 즐길 수 있는'.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