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을 땐 이미 대기 줄에 서 있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햇볕이 뜨거운 여름임에도 줄 서기를 포기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다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식사를 꼭 하고 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의 그런 결심을 알고선 가게 앞 바구니에 양산 여러 개가 두둑히 쌓여있었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대략 1~2주 주기로 바뀌는 편이라 방문하는 날 미리 메뉴를 알아보고 간 상태였다. 인도식 팔락 파니르와 같은 맛이 예상되는 시금치 카레를 주문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메뉴가 나왔고 첫 맛에 들었던 생각은 ‘정체를 알 수 없음’ 이였다. 알고 있었던 맛 보다 고소함의 정도가 강했고 어쩐지 카레에 들어간 재료들의 입자가 곱고 부드러러워서 목 넘김이 쉬운 수프 같기도 했다. 내게는 낯선 식재료 오크라는 시금치 카레의 고소한 식감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배고플수록 밥 먹는 속도가 빨라지는 편인데 눈앞에 ‘카레 맛있게 먹는 방법’ 쪽지를 보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비빔밥처럼 한번에 비벼 먹지 말고 조금씩 밥에 카레를 얹어 먹었다. 전부 비비면 식감, 수분, 재료의 조화가 망가진다는 사장님의 조언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보았다. 미리 알지 못해 아쉬웠던 점은 내가 맛보았던 시금치 카레가 비건식으로 재창조한 채식 메뉴라는 것이다. 인도의 정통 카레와 다르게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것, 8가지 천연 향신료, 캐슈넛 페이스트가 들어갔다는 점도 익숙하게 알고 접해왔던 카레와 달랐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마치 카레의 변주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인도, 스리랑카, 태국 일본 등 다양한 카레를 먹어볼 수 있지만 때로 국적조차 불분명한 창작 카레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벌써 7번째 여름을 지나오며, 사장님은 카레에 대한 진심을 온마음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카레에 관한 두 권의 책이 발행됐고, 향신료 카레 정보를 공유하며, 앵콜 카레를 투표하는 등 매장을 애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말이다. 카레 맛의 재미를 알리고 잘못된 향신료 상식을 바로잡으려는 주인장의 단단한 고집도 느껴졌다.
매장 이용과 대기 안내에 대한 운영 방침은 단어 하나에도 방문객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영업 시작부터 방문객들의 주문과 메뉴 준비가 빈틈없이 오고가는 사이 따뜻한 친절이 묻어나왔다. 공간과 매장 운영자가 이루는 특유의 에너지가 참 좋았던 곳이다.10평 남짓한 공간이 이 자리에 계속 머무르기를 바라는 욕심을 내어본다. 언제든 방문해도 그때의맛을 기억하는 안도감을 느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