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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Aug 29. 2019

나의 아기, 드디어 집으로

2017년 7월

초여름에 만났어야 할 우리 복동이가 추운 날 세상에 나왔다. 재태주수 24주 5일 차, 760g의 조그맣고 가녀린 아기였다. 병원에 너무나 작은 아기를 두고 수개월 간 면회를 다니면서 나는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았다.


내 아기가 과연 나에게 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비는 시간엔, 이 녀석이 아픈 곳 없이 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던 암담하고 두려운 날들을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저 지금도 가슴이 콱 메일 뿐.


삐삐 기계음만 들리던 그곳에서 내 아기는 부지런히 자라주었다. 감사하게도 거치는 의료진마다 일찍 나와 이만큼 잘 크는 경우가 드물다 말했지만, 끝까지 완벽하게 운이 좋을 순 없었던 걸까. 오랜 삽관으로 부어버린 기도에 숨길을 내는 수술을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품에 내 아기를 안아볼 수 있었다.


퇴원 전, 서울대병원 병동에서 아기와 함께 십여 일을 지냈다. 아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지러지게 울며 혼자 견뎠을 과정들을 직접 보며 많이 울었다. 그래도 더 이상은 내 강아지가 혼자 외롭게 울거나 무서워하지 않도록 엄마로서 달래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복동이와 함께 지낸 지 이제 십구일 차.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가래를 수시로 빼주어야 하고, 수술부위 소독도 만만찮다. 감염에 취약한 터라 외출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우리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가가 병원서 입었던 옷을 받아와 냄새를 맡아보며 몰래 울지 않는다. 매일 밤 일기를 쓰며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지 않아도 된다. 우는 아기를 어깨가 결리도록 안아줄 수 있고, 노래도 불러주고, 엄마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고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남편도 한 학기 휴직을 한다. 어쩌면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가족이 측은하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소중한 딸의 아기 시절을 되도록 많이, 함께,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가슴에 새기고 싶은 것이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불행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꿀꺽꿀꺽 견디면서, 매일같이 새롭게 화가 나고 비참했었다. 그랬었기에 아기와 함께 지내는 지금이 오히려 잔잔하여 편안하다. 마음에 두려움이나 눈물 고인 구석이 없다. 변화무쌍한 내 딸이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모습, 물놀이를 맘껏 할 수 없다거나, 사촌언니들과 맘껏 살 부비고 놀지 못하게 되는 것. 뭐 나열하지 않아도 아가가 안쓰러워 눈물겨울 날은 허다하겠지만 우리는 딸을 열심히 사랑해 줄 것이다.


복동이는 결국 건강하게 자랄 것이고, 언젠가는 엄마라고 이쁘게 불러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벅찬 마음을 어찌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네. 앞 날을 지레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려고 노력해야 될 일이다. 그냥 지지고 볶으며 살아보자. 평범하게 자잘 자잘 매일을 쌓아가고 싶다.


많이 사랑해, 내 강아지. 엄마 딸로 와주어서, 우리 집에 와주어서 정말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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