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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Jan 04. 2024

2023년의 크리스마스

Thanks to…

요즘 들어 ‘때문에’와 ‘덕분에’의 차이가 궁금한 우리 복동이 덕분에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들을 꼽아본다.


하나. 크리스마스를 앞둔 금요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이들을 위한 캐럴 공연을 했다.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실력으로 나는 기타를 잡았고, 일 학년부터 육 학년 동료 선생님들과 뚝딱거리며 무대를 마쳤다. 주린 배로 들어선 급식실에서는 엠엔엠이 콕콕 박힌 크리스마스 초콜릿 쿠키가 디저트로 나왔다. 약간 부서진 쿠키를 들었다가는 나를 보고 다시 예쁜 쿠키를 찾아드는 선생님께  그냥 주시라고 손사래를 쳤더니 이렇게 덧붙인다. “딸내미 갖다 줘야지.”

저녁때 받아 본 엉망진창 크리스마스 공연 동영상 속에서 나는 내내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복동이는 초콜릿 쿠키를 엄마, 아빠와 나눠먹는 모습을 산타 할아버지가 꼭 보시길 기원하며 맛있게 먹었다.



둘.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교무실과 행정실에 아름다운 센터피스가 놓였다. 초록과 빨강의 조화로운 구성에 연신 감탄하는 내게, 세상 무뚝뚝한 우리 주무관님이 저그 복도에도 하나 만들어 놨으니 가지고 가란다. 아, 초여름엔 소담스러운 수국을 꺾어와 나눠주시던 분. 겉모습만 보고 타인의 감성을 판단하지 말지어다. 우유병에 꽂힌 싱그러운 다발을 들고 나서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봉님의 작품은 지금도 우리 집에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중이다.



셋. 복동이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왔다. 아름다운 샛별 같은 엄마를 우주만큼 사랑한다고 쓰여 있었다. 이만큼 멋진 크리스마스 카드는 지금껏 받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밤, 복동이가 농장 여행을 가서 캐온 제 주먹만 한 무를 (섞어) 넣고 소고기 뭇국을  끓여주니 이렇게 묻는다.

“엄마, 내가 캐온 무가 세상 어떤 요리사의 무보다 더 맛있어요?”

하핫, 자기도 모르게 세상 제일 맛있는 무를 골라버렸다는 꼬마의 귀여운 허세라니.




넷.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보기 위해 감행한 서울 여행은 너무나 많은 사람, 매서운 추위에도 행복했다고 말하겠다. 복동이에게 드디어 크리스마스 시즌 호두까기 인형을 보여줄 수 있어서. 남편만 못 가본 정동 브런치 카페에서 훌륭한 에그 베네딕트를 맛보게 해 줄 수 있어서. 한적한 덕수궁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을 충분히 볼 수 있었기에.




따뜻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음악, 그림, 춤, 그리고 가족이 함께 한 2023년의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추운 계절, 내가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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