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he Essay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 Sukwoo May 28. 2022

아마도 10년 안에 꽤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2022년 5월 18일

우리의 날은 줄고, 하루는 대체로 바로 앞이나 다음 달에 놓인 무언가를 목표로 이어지는데, '그래도 이런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중간에 잠시 시간을 만들고 혼자 상상해보고는 한다.

같이 대형 전광판에 걸린 작업을 마무리한 친구에게 임금 지급 관련 메시지를 보냈더니, 돌아오는 답은 세금 계산서 발행이 아니라 요즘 좀 재미가 없다는 말이었다. 영상을 업으로 삼은 친구는 단편 영화라도 하나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연 단위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일정표를 다시 만들었다. 빼곡하게 들어선 루틴의 총합으로 보이나, 사실 하나씩 모두 다른 기획과 실행과 아직 도달하지 않은 도전 비슷한 것들이 담겼다. 친구의 말을 듣고는 틈틈이 '해보고 싶은' 걸 이미지로 저장해두는 핀터레스트 Pinterest 폴더 하나가 떠올랐다. 이미 도메인을 하나 사두었다. 남들과 하는 일, 남들이 꿈꾸는 일에 참여하여 성과를 내는 것이 밥벌이의 큰 비중을 차지하나, 때로는 어찌 될지 모르는 무언가를 조금은 더 순진하고 천연덕스러운 마음으로 해보고 싶다.

적어도 그러한 마음을 유지하는 동안은 생물학적 나이에 따른 — 남들이 말하는 — 책임 같은 것과 별개로 즐거운 시간이 늘지 않나요.

어제 선호 형의 새 사무실에 갔다. 매주 월요일 정기 회의가 화요일로 밀린 탓이었을까. 동대문을 코앞에 두고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공간은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좋았다. 좋은 물건으로 가득 차서 좋다는 것과는 다르다. 빛이 사방에서 들고, 열어젖힌 창문 밖에 서울 도심 한복판의 주거 지역이라고는 해도 끊임없이 새가 지저귀고(무슨 일이 난 건가 싶을 정도로), 오래 안 사람들끼리 칠 수 있는 농담과 지금 하는 일과 거리를 둔 근황들, 또 일주일의 시작에 쉬어가는 감각이 혼재하였다(아직 화요일이라니). 역풍인지 스튜디오에 돌아와서는 편두통이 심했다. 밤늦게 전화 회의를 마치고서야 일과는 어느 정도 끝이 났다.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서 우리는 무엇을 하나.

차를 사고, 집을 마련하고, 결혼과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지하는 동시에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였던 부모님의 어깨에 조금씩 더 다가선다.

요즘 나는 집을 '짓고' 싶다.

평생 산 '집'들을 생각해보면, 아파트와 빌라가 전부였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물론 편리하지만, 부동산과 자산 증식의 관점이 주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데 아무래도 거부감이 든다. 이건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왠지 해버릴 것 같다.

요절이나 단명을 원하는 마음은 물론 없으나, 천수를 누리고 싶은 마음도 사실 별로 없다. ​


이런 말은 너무 '중2병' 비슷할까. 못해본 것들이 마음에 걸리긴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악착같은 미련이 크지 않다. 살아가는 동안 점점 더 생각하는 것들은 대체로 남과의 관계에 발생하는 접점이나 편린이 아니라, 나의 안에 발생한 그 안에 시시각각 충돌하는 무언가였다.

지금의 나는 원하는 걸 먹을 수 있다. 원하는 데 갈 수도 있다. 일도 나쁘지 않으며, 아끼는 적은 사람들과 아직 건강을 유지하는 가족이 있다.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않았으나, 반대로 남들보다 훨씬 빨리 결혼한 누나 덕에 장성한 조카 둘이 인생의 중요한 지점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가끔 사람들과 실현 가능성 적은 작당 모의를 하거나, 정교하게 짜고 보완해야 하는 생업으로서의 일과는 관계없이 그저 돌아다니며, 사라지는 걸 혼자 바라보며, 사진을 남기거나, 사색하거나, 아무런 영양가 없이 하루를 낭비할 수 있다.

아마도 10 안에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


70대, 누군가의 부고를 보고 접하면서 이제 그 나이에 접어든 부모님을 염려한다. 겪어보지 못한 아픔과 슬픔이 필연처럼 다가올 것이라는 걸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아마도).

모든 생각의 결과가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았으면 한다. 앞에 놓인 걱정과 일에 치이는 삶을 살다가도, 가끔은 마치 영혼이 몸을 빠져나간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고, 또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삶은 작고 사소하지만, 반대로 크고  광활할  있다. 그러나 이를 판단하는 요소가 남들이 이미 정한 기준만은 아닐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technically I'm nine years ol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