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9일
"잘 지내지?" 같은 말을 무심결에 들을 때, 음, 어느 정도 선까지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한다.
"아버지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할지, 아니면 으레 이어지는 일반적인 안부 인사로 맺을지.
어제는 아침부터 아빠 통증이 심해져서, 병원 상담부터 이곳저곳 수소문하여 집 근처의 (그나마) 큰 병원에 가서 수액 진통제를 맞았다. 기존에 처방받은 진통제가 듣지 않아서, 좀 더 강력한 진통제도 추가 처방을 받았다. 입원하기로 한 세브란스병원에 연락해 보니 담당의는 오늘과 내일 휴진이었고, 상담 간호사님에게 동네 내과에 가서 처방약을 더 받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병원에는 여전히 환자들이 몰릴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 모두 열심히 일하고 계실 테니 섣부르게 불평할 수만은 없다.
이제 곧 9월이다. 조직 검사, 확진, 항암 치료 — 나는 물론이고 가족 역시 처음 들여놓을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아버지는 일주일 만에 몸무게가 2kg 더 줄었다. 2층 대기실 앞에 앉아서, 통증을 그나마 줄이기 위하여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평소 자주 쓰는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쓴 얼굴 일부와 드러난 팔은 더 야위었다.
통증이 심하면, 우리가 아플 때 그랬던 것처럼 밥을 먹는 것조차 귀찮아진다. 밥을 먹지 않으면, 체력이 고갈되고 근육이 빠진다. 그렇게 몸은 더 약해진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지금은 이걸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아버지 옆에서 매일 함께 밥을 먹고, 또 차려 주시는 엄마에게 말로만 하고 포기하지 말고, 아이에게 먹이듯이 숟가락을 들이밀 각오를 이야기했다. 밥을 먹는 게 정 어렵다면 (췌장암과 함께 온) 당뇨 대응 음료나 과일이라도 계속 먹도록 유도하자고 말씀드렸다. 가능하면 입원하기 전 며칠 동안 1kg이라도 다시 붙은 상태로 갔으면 한다. 아빠가 가장 힘들겠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위안 삼아서 말이다.
누나는 전주에 있다. 큰 조카는 (내 기준에) 너무 어리다. 엄마도 아빠 옆에 계속 매달리기에는 본인 건강을 신경 써야 한다. 무엇보다 까다로울 것이 분명한 항암 치료 과정을 직접 듣고, 공부하고,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내가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 할 일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정중하게 거절하고, 어느 정도 양쪽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보통 가방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무거운 걸 드는 건 질색이라, 외부 회의가 있어 노트북 컴퓨터나 아이패드를 들고 다닐 때가 아니면 (보통 들고 다니지 않는다) 작은 크로스 백 위주로 최근 몇 년간 사용하였다. 지난주인가, 문득 어깨로 매는 큰 가방에 다시금 눈이 갔다. 금장 지퍼가 달렸다든지 로고가 큰 화려한 것은 물론 아니다. 바구니처럼 사용할 수 있고, 가능하면 10년 이후에도 쓸 수 있을 튼튼한 가방.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병원에서 출력한 종이 서류를 가지고 다닐 일이 많고, 앞으로 병원을 종종 다닐 때 이것저것 그저 넣고 다니면 어떨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 가방들이야 이미 가지고 있겠지만, 모순되게도 이런 상황에 딱 맞는 가방을 사고 싶다, 생각했다.
엄마도 여름 이후 6kg 정도가 빠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다니는 동네 내과에 혈액 검사를 하러 간다. 아버지의 건강은 물론 가족과 나의 건강 또한 돌아본다. 그간 얼마나 건강하게 살지 않았나.
이 모든 게 시작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이쪽과 저쪽, 빛과 그늘, 행복과 우울, 언제든 사실은 놓여 있는 작지만 위안을 주는 시간 같은 것을 떠올린다. 사람에게 죽음이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항상 겪고 나서 깨달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역설적으로 가족이 처음 모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형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 젊은 나이의 비극이고, 여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으나 남은 가족을 조금 더 단단히 만들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아버지의 병이 왔다.
이제 아버지는 자세한 검사를 앞두고 있다. 결과를 듣고 시작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굴복하거나 미리 냉소하는 태도는 그 누구의 곁에도 두지 말자. 이른 새벽 먹구름이 가득했던 창밖 하늘이 서서히 푸른 하늘과 희고 옅은 뭉게구름으로 바뀌어 간다. 오늘은 오래 방치한 로잉 머신을 탈 생각이다. 사람은 크고 작은 인생의 좋은 것과 아닌 것이 모여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중간에 넘어지거나, 멈추더라도 그것은 좌절이나 패배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보거나,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이를테면 나는 과정의 인간이다. 결과는 그 이후 어딘가에 남은 부록 같은 것이다.
Seoul, S. Korea
Sat, August 02 — Sun, August 24, 2025
명동 골목에서 호랑나비를 봤다. 쨍하고 덥고 습한 날이었다. 바로 옆 공사장에서 새어 나온 물의 흔적 근처를 돌아다니며, 한 발짝 다가서면 부리나케 경계하며 이따금 살며시 앉아서 남아 있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생명을 느꼈다.
온갖 혼란의 온상이었던 한남동의 커다란 대로는 상대적으로 고요해졌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느라 문제가 있다던 육교는 바닥을 새로 바르고 정확히 2분의 1을 통제하고 있었다. 여기 아직 텅 빈 땅이 있었나? 프라다 Prada의 광고판은 어딘지 모르게 역설적으로 보였다.
너무 커서 잘 쓰지 않았던 루이비통 (Louis Vuitton)의 키폴 반둘리에 (Keepall Bandoulière) 50 가방을 얼마 전 오랜만에 썼다.
Photographed by Leica 라이카 D-Lux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