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검은 보물
2015년 3월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제주도 흑우(黑牛) 사진 좀 찍어 주시죠!”
“네? 흑우요?”
제주도에 검은 소가 있는데 사진을 찍어 달라는 것이었다. 흑우? 검은 소? 순간 우리나라에 검은 소가 있나?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블랙 야크나 일본 와규(わぎゅう,和牛)는 들어보았지만, 우리나라의 검은 소라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옛날이야기 중 ‘황희정승과 농부 - 검은 소가 일을 잘하오? 누런 소가 일을 잘하오?’에서 검은 소를 들어보긴 한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전과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牛)’는 인간생활과 매우 밀접하고 친근하며 경우에 따라 신성하고 존귀한 동물이다. 그런데 검은 소?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검은 소에 대한 호기심이 불쑥 일었다.
검은 소 즉 흑우(黑牛)는 토종 한우의 하나로 몸 전체가 검은 털로 덮여 있으며 현재 제주도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제주도에서는 제주 흑돼지, 제주 재래마, 제주 흑우를 일컬어 ‘제주의 검은 보물’이라 한다. 흑우는 최근 2013년도에 천연기념물 546호로 지정되었다. 거의 멸종 직전에 부활하기 시작한 소(牛)라고 한다. 난 이 몇 가지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제주도에 도착했다. 마침내 3대째 이어 온 흑우 농장에서 흑우(黑牛)와 처음으로 마주했다.
카메라 프레임 안이 흑(黑)빛으로 가득 찬다. 짧지만 강하게 뻗은 뿔은 검은 털에 도도함을 더한다. 근육질 몸뚱어리를 떠받치고 있는 흑색 발굽은 우직함을, 잘생긴 턱의 듬성듬성 짧고 강한 흰 수염은 고집을 드러낸다. 아! 그리고 렌즈에 들어온 그의 은빛 먹빛 커다란 눈망울은 순수함 속에 슬픔을 담고 있다. 흑우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얼굴과 오버랩된다. 문득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뛴다. 난생처음으로 흑우를 바라보고 그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검은 소가 있다니!
사진가인 나는 ‘왜 이 흑우를 찍어야 하는가?, 검은 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흑우를 어떤 미학적 감성으로 이해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소는 일을 하는 집짐승이었다. 이제 소는 더 이상 일소는 아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죽어서도 자신의 살과 뼈는 물론 가죽까지 아낌없이 내주는 희생의 상징인 초식동물이다. 나는 사진가로서 그의 미학적 사진 한 장을 남겨주고 싶어졌다. 나는 그의 얼굴을 담아내기로 한다. 우직함을, 도도함을, 고집과 슬픔을 표현하고 싶다.
우리의 흑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졌다. 그러자 바로 의문이 생겼다. 제주도의 유명한 흑돼지와 제주마(馬)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데 왜 유독 제주흑우는 모르는가? 이 멋지고 잘생긴 흑우는 무슨 이유로 멸종의 위기에서 부활되고 있는가?
제주도에서 흑우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여러 문헌을 찾아보며 제주흑우에 담긴 놀라운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흑우는 삼국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매우 귀한 소로 인정을 받고 우수한 품종으로 기록된 여러 역사적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8년(1732년) ‘제향에 쓰이는 흑우는 더없이 중요한 제사에 바치는 물건이다.(祭享黑牛係是莫重薦獻之需)’ / 영조 43년(1767년) ‘친경 때에 흑우를 사용하라.(親耕時用黑牛)’ / 《세종실록》 ‘제주흑우는 고기 맛이 우수하여 고려시대 이래 삼명일(임금 생일, 동지, 정월 초하루)에 진상품 및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품으로 공출하였다.’
그렇다면 더욱 의문스럽다. ‘언제부터 흑우는 우리 곁에서 멀어졌을까?’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여기저기 문헌을 찾아보니 흑우의 쇠퇴는 자연소멸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제의 수탈과 책략의 결과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조선총독부 및 각종 통계 자료에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살아있는 한우 약 150만 마리 이상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로까지 반출되었고, 죽어서 가죽으로 반출된 한우가 약 600만 마리로 추정된다.’라고 나와 있다. 소의 가죽은 대부분 일본 군인들의 피복, 군화, 배낭, 혁대 등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공장의 기계 동력 전달용 벨트로도 이용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소는 쌀, 콩 다음으로 중요한 일제의 식민지 수탈 대상이었다고 한다. (일본제국주의·천황제하의 조선우 통제·관리, 조창연 譯) 또 하나의 역사적 비극이다.
제주흑우는 1924년 암소 125두, 수소 50두, 1925년 암소 25두, 수소 1두가 일본으로 수탈되어 간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28년 일본은 자국의 ‘미시마소(見島牛)’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미시마소는 바로 일본 흑우인 ‘와규’의 원조이다.
오늘날 일본 문화재청에서는 ‘미시마소는 무로마치 시대(1336-1573)에 조선반도에서 도래하여 현재까지 혼혈(교잡) 없이 사육되어 왔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규(和牛)로 일컬어지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1924년 일본으로 ‘수탈된 제주흑우’와 1928년 일본의 ‘미시마소 천연기념물 지정‘은 공교로운 일로서 ’혼혈(교잡) 없이‘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한편, 1928년 권업모범장사업보고서를 보면 한우모색은 적갈색 77.8%, 황갈색 10,3%, 흑우 8.8%, 칡소 2.6%, 갈색백반우 0.4%, 흑색백반우 0.1%로 다양한 털색을 가진 토종 한우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급기야 일본은 1938년 한우에 대한 새로운 표준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일본 흑일매(黑一枚), 한국 적일매(赤一枚)’ 즉, 일본의 소는 흑색을 표준으로 하고, 한국의 소는 적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는 모색통일 심사표준법을 발표한다(동아일보 1938년 12월 21일). 다시 말하자면, ‘적갈색 소’만을 조선우(朝鮮牛)로 인정하기로 하는 한편 일본은 ‘흑색’을 기본으로 ‘와규(和牛)’를 장려한다는 모색 일체화 정책을 편 것이다.
알고 보면 이 법은 우리 소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무서운 법이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흑우와 칡소를 말살시키는 법이었다. 자연히 국내에서 평가절하된 흑우와 칡소는 잡종으로 분류되어 농가에서 사육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발생하였다.
왜 일본은 자국 소의 표준을 흑색으로 정했을까? 그들은 이미 흑우의 우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사라진 흑우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늦게나마 멸종 직전의 제주흑우 부활을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보존과 연구를 진행하면서 노력한 결과, 제주흑우는 2013년 7월 22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546호로 지정되었다. 이제 제주흑우는 제주의 검은 보물로 거듭나고 있다.
2015년 3월에 시작된 흑우와의 만남은 나에게 ‘제주흑우의 조명’이라는 새로운 주제 의식과 소명감을 안겨 주었다. 그리하여 우보천리(牛步千里), 우직한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마음으로 제주흑우를 좇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문화 예술적 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7년, 제주흑우를 향한 나의 열정은 이제 ‘제주흑우 그리기’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나는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에 있는 마을 감귤창고 하나를 빌려 제주흑우 갤러리 겸 그림 작업실로 만들어 놓고 제주에 정착하였다.
앞으로도 쉼 없이, 홀로 작은 발걸음일지라도, 수탈과 멸종의 위기를 겪고 바야흐로 부활하고 있는 우리 제주흑우의 내일을 만들어 가고 싶다.
김민수 작가
제주 스토리 고팡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제주의 숨겨진 콘텐츠를 기획, 관광객 및 도민들에게 심도 있는 콘텐츠를 풀어 설명줄 제주를 가장 잘 아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합니다. 고팡은 제주어로 창고를 말합니다.
제주도 공식관광 포털 비짓제주(www.visitjej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