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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12. 2018

며느리의 일기장 30

나도 걔네 부모님 생각하면 속상한데, 자기들이 좋다니 어쩌겠어.

 하루는 시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가씨 남자친구 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가씨 남자친구 댁도 만만찮은 집안이었기에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았다.

둘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결혼 얘기가 오갔고, 가족들 사이에서 둘은 암묵적으로 결혼한 사이나 다름없었다.


 대화 중 시어머니께서 사돈이 되실 분들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셨다.

아가씨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느니, 벌써부터 시집살이에 대한 조짐이 보인다느니, 그래서 아가씨가 자기들은 결혼하면 도망가서 살 거라고 했다는 둥.

본인 딸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다.

그래서 기가 찼지만 "아가씨 그대로 결혼하면 많이 힘들겠어요"라고 말하자, 시어머니께서 대답하셨다.

"나도 걔네 부모님 생각하면 속상한데, 자기들이 좋다니 어쩌겠어."


 속으로 '저희 부모님도 속상해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시어머니께서는 항상 나에게 "딸 같은 며느리"라고 하셨다.

내가 받아들이기론 '딸 같다는 핑계로 막대해도 되는 며느리'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어머니께 딸처럼 모든 것을 이해해드릴 수 없듯이 어머니께서도 나에게 딸같이 대해주실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 허울뿐인 말로 나를 공격하는 건 힘들었다.


 포장 아닌 포장된 말로 나를 힘들게 할 때면 나의 존재가치부터 따지게 됐으니까.

그 정도가 심할 때에는 나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다시 남이 된 시점에 무슨 생각을 할까?

나에 대해서 '그래 잘 나가떨어졌다.'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일말의 좋았던 기억이라도 갖고 있을까?

모르겠다. 그리고 기대도 안 한다.


 님이라는 말에 점하나 찍으면 남이라고, 애가 없으니 이혼도 참 쉬웠다.

내 결혼생활이 이렇게 짧고 쉽게 끝나게 될 거라고 결혼식 당일조차도 생각 못 했다.

요즘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가면 참 많이 힘이 든다.

그래도 축하해주러 가는 입장에서, 나도 전에 축하를 받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마음 반으로 가면 내 결혼식 장면이 오버랩 돼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기진맥진 해진다.

다른 사람 결혼식 내내 나는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결혼식을 피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정말 힘들 것 같으면 양해를 구하고 나중에 직접 만나서 축하해주기로 한다.


 이혼한 지금 아직도 조금은 힘이 든다.

아직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많이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가끔은 현실이 괴롭다.

내가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

괴롭고 힘들었던 그 시간으로 인해 현재도 이따금씩 괴롭다는 사실에 지칠 때도 있다.

그럴 땐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영화만 보다가 그래도 회복이 안되면 유튜브로 강연을 본다.

그리고 또 이렇게 글을 쓴다.


 누가 보면 답답할지도 모르겠지만 이혼 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요즘, 바쁘지 않은 날엔 내 나름대로 적정 감정선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가끔은 남들처럼 회사에 다시 취업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냥 이렇게 나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는 요즘이 편안하고 좋은 것 같다.

언젠가 괜찮아지면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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