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출퇴근을 시작한 지가 벌써 10개월, 곧 1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작년 말, 이직을 하려고 준비하던 중 한 회사에서 제가 이력서를 넣지도 않았는데, 구직 사이트에서 저의 공개 이력서를 열람하고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인 데다 주 4일은 재택근무여서 마음이 많이 갔지만, 저는 예상 밖으로 그곳에 가기를 거절하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은 집과 회사의 거리가 상당해서 출퇴근 길에 톨게이트까지 걸어가서 광역버스를 타고도 지옥철을 약 한 시간은 타고 가야만 하는 곳이기에 저의 선택에 적잖이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이전에 잠깐 일하며 수습기간만 채웠던 꽤 큰 회사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았었는데, 이 회사에서 첫 면접을 보던 날 면접관으로 앉아 계시던 직원분을 통해 느껴지는 회사의 분위기가 참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그게 저의 발목을 잡은 셈이지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을 겨울의 폭설과 여름의 폭염에도 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폭염이 가시자마자 대표님으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게 된 겁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임금을 주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지금 맡고 있던 사업은 운영난 때문에 잠시 보류할 계획이에요. 10월부터는 000 담당자들 모두 무급 휴직으로 전환하려고 합니다."
규모가 작은 회사라서 직원이라고 해도 열 명 남짓, 그중에 총 네 명이 3개월 무급 휴직을 권고받았습니다. 추석 전까지만 해도 작업에 속도를 내라고 독촉하시던 대표님이 추석이 지나서는 갑자기 사업을 중단해야 하니 쉬라고 한 겁니다. 정말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당황했습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이해하려는 마음도 들었지만, 제 가정 경제를 생각하면 이렇게 갑작스러운 휴직은 말이 휴직이지 실직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화를 내지 그러느냐고도 하고, 나가라는 말 아니냐고 대신 성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번 일로 퇴사하는 사람도 있고 휴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화를 낼 만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요. 생각보다 휴직 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어요."
위로라고 건넨 대표님의 말이 제게는 더 아팠습니다. 회사가 두어 달이면 회복되고 건재할 자신이 있다면 이렇게 무책임하게 갑자기 무급 휴직을 통보할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퇴사를 하자니 두 달이 비어 퇴직금도 못 받게 생겼고, 갑자기 이직할 마땅한 곳도 없어서 대표님께서 제안하신 대로 휴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요. 000 님은 남편이 있잖아요, 몇 달은 남편을 믿고 쉬어요."
대표님은 이해해 줘서 고맙다며 제게 좀 쉬다가 오라고 하셨지요.
"요새 여자고 남자고 상관없이 모두 가장입니다. 평범한 외벌이로 아이들 교육비, 공과금, 식비.... 감당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화를 내며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습니다.
휴직이라는 명목으로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이번 무급휴직 사태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한 여직원과 함께 퇴근을 했습니다. 퇴근길에 그 여직원은 다음 달부터 자신의 집 대출금 상환이 시작되어서 지금 받는 월급으로는 충당이 안 되어 고민이라고 하더군요. 투잡을 해야 할지, 월급을 더 주는 회사를 알아봐야 할지 고민 중이라는... 여직원의 그 말끝에 달린 슬픈 표정이 안쓰러웠습니다.
'당신이 아니라 나라서 차라리 다행이다. 나는 집도 없고 전세이니까 빚 독촉은 없는데... 다만 앞날이 창창한 두 아이들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게 걱정이다. 그렇다고 다니고 있던 학원이라고 달랑 한 개인데 그마저도 그만두라고 하기도 가슴이 아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