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답안지에는 유독 빨간 비가 자주 내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가위표가 처진 대목은 단연 ‘첫 직장’이었다.
나의 꿈은 단정하게 정돈된 언어로 세상을 전달하는 아나운서였다. 카메라 앞에 서서 조명을 받으며, 가장 정제된 목소리로 대중과 호흡하는 나를 수만 번 상상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치열한 문을 뚫고 들어간 나의 첫 일터는 아나운서실이 아닌 보도국이었다. 마이크를 잡는다는 점은 같았으나, 기자의 삶은 아나운서의 그것과는 결이 너무도 달랐다.
우아한 스튜디오 대신 먼지 날리는 현장을 뛰어다녔고, 정제된 멘트 대신 날 선 비판과 팩트를 찾아 헤맸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몸은 늘 쑤셨고, 마음은 아나운서라는 '정답'을 쓰지 못한 채 기자라는 '오답'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결국 나는 그 오답지를 구겨버리고 퇴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생은 그 '오답'에서부터 진짜 답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자 시절 체득한 현장의 긴박함과 논리적인 문장 구성력은 퇴사 후 시작한 프리랜서 아나운서 활동에서 독보적인 무기가 되었다. 남들이 써준 원고를 읽는 것을 넘어, 스스로 원고를 장악하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 역량은 다시 뻗어 나가 기업 강사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청중의 마음을 꿰뚫는 질문을 던지고, 복잡한 정보를 구조화해 전달하는 기자의 감각이 강단 위에서 빛을 발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펜을 들어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내가, 기자라는 오답을 거쳐, 프리랜서로, 그리고 이제는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담아내는 등단작가가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기자 시절의 그 고단했던 시간은 틀린 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가장 정교한 밑그림이었다. 만약 내가 곧장 아나운서라는 정답에 안착했더라면, 나는 방송 작가님의 글을 보며 정돈된 말하는 법은 배웠어도, 내 안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문장으로 길어 올리는 법은 몰랐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안다고 이야기 한다. 인생에 그어진 수많은 가위표와 오답들이 사실은 다음 페이지의 정답을 완성하기 위한 힌트였다는 것을.
나의 오답 노트는 이제 나만의 고유한 서사가 되어 세상에 읽히고 있다.
내 인생이 내게 준 가장 큰 깨달음, 그것은 바로 "때로는 오답이 가장 찬란한 '오! 답!'을 만든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