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고운 Jan 30. 2022

네 생각은 어때?

프로경청러, 그의 한마디를 청하다

     

만날 때마다 계속 웃기만 하는 동생이 있었다. 조금 더 과장해서 커피 한 모금 호로록하며 음식을 먹는 순간에도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내 이야기를 너무나도 친근하게 들어주는 정말 아름다운 친구였다.


아니나 다를까 스피치에서는 경청이 참 중요하다던데! 그녀는 늘 ‘프로경청러’답게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아니던가. 정말 경청의 여왕이라 칭할 만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친구에 대한 추억을 더듬은 적이 있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저 웃는 얼굴과 ‘오~’ ‘와~’하던 리액션 말고는 생각나는 장면이 크게 많지 않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었단 사실을...     


나도 ‘스피치’라는 것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제대로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못했던 시절이다.  단순히 경청이란 ‘잘 듣는’것으로만 생각을 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로 신이 난 누군가가 이야기를 펼치면 그저 끄덕임과 ‘오~’, ‘와~’, ‘진짜?’ 등등 리액션으로 한 시간이면 한 시간, 두 시간이면 두 시간을 들어주었던 것도 같다.      

상대방이 신나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말을 끊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한 나머지 재미가 없어도 사회적 미소를 연신 지어 보이곤 했다. 아마 영혼 없는 웃음으로 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그 동생은 얼마나 내 말을 '참아준' 것일까?  언니가 신이 나서 말을 풀어놓으니까 끼어들지 않은 것일 수 있고, 나는 웃는 동생을 더 웃게 해주고 싶다는 대단한 착각에 빠졌던 것이리라. 목 아프게 각종 ‘썰’을 방출하곤 했던 쉴 새 없던 내 모습이 그저 웃프게만 다가왔다.


일방적인 전달과 이야기쇼를 펼친 것에 불과했던 나. 리액션에 만족하던  나. 우린 그렇게 서로 교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동생은 지금도 여전히 경청과 미소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특별한 나쁜 이슈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서서히 멀어진 느낌이다. 서로 현실에 치이며 바빠서일 수 있지만, 교감 없이 지속되던 우리 사이에 끈끈함이 생기기가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이 뒤따른다.     


‘진심 그리고 관심’     


“요즘 남의 돈 벌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 공부가 정말 쉬웠던 건가.”

“그나저나 넌 어떻게 생각해? 졸업하고 취업하니까 기분이 어때?”      


만약 그때 내가 ‘힘듦 드립’을 멈추고 그녀의 힘듦을 좀 더 듣고 싶어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와 눈을 마주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서 서로의 아픔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을까? 교감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그저 듣는 것에 그치던 대화는 우리 사이를 그저 그런 무난한 사이로 만들고야 말았다. 


올해 새해를 맞이하며 나는 한가지의 용기를 첨가하기로 했다. 스치듯 지나버린 아쉬운 인연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 물론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가 말하듯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일 테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 내가 제대로 된 대화가 뭔질 안다는 사실이다. 


단언컨대, 서로 관심을 주고받는 것이야 말로 우리 인연에 접착제를 바르는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너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