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욱근 Mar 23. 2020

세아 씨의 특수학교

춘래불사춘 :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음.

연말이 지나고 새해를 맞다 보면 꼭 겨울이 두 개인 것 같아. 그렇지 않니. 


춘래불사춘 :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음.


창문은 제주바다 같은 에메랄드 빛으로 환하게 물들어 있었고, 문틈 사이로 새어오는 봄바람은 세아의 두 뺨을 스쳤다. 눈을 떴다. 세아는 아주 잠깐 천장을 바라보다 이내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날의 공기가 삼월의 햇살을 넉넉히 머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눅눅한 흙냄새. 손으로 만져 보진 않았지만 얼었던 땅이 점차 녹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아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가 두 손에 휠체어를 들고 들어왔다. 


학교엘 간다 했다. 어디에 다녀본 일이라곤 어린이집 2주가 전부. 그것도 다녔다고 하기보단 버텼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아를 어린이집에서 감당할 수 없다 했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애원하며 버틴 게 2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세아를 힘껏 끌어안고 울었다. 울긴 울었는데, 세아의 어깨로 떨어지는 눈물이 평소보다 빨리 식었다. “세아야, 이제 너도 학교 다닐 수 있겠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특수학교가 세워진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들뜬 건 세아도 마찬가지. 세아는 자주 꿈을 꿨다. 녹음이 우거진 한여름날, 바닥에 하얀 눈이 쌓이는 기이한 꿈이었는데, 세아는 그것이 칠판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상하다. 왜 학교에 어른이 이렇게 많지?’ 입학원서를 내기 위해 학교에 도착한 세아는 학교 정문의 분주함과 마주했다. 세아가 다닐 학교 앞에는 수십 명의 어른들이 학교 정문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대치해 있었다.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서있는 모습이 혹 경기에 출전한 청군과 백군 같기도 했다. 그런데 운동회라 하기엔 외치는 구호가 이상했다. “ㅇㅇ동은 장애 동네가 아니다, 특수학교가 웬 말이냐.” 운동장에 서있는 주민들이 외쳤다 “아이들의 교육권은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우리 아이도 학교 보내자.” 등굣길에 선 학부모들이 받아쳤다. 서로의 목소리에선 한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운동회가 아닌 한 명이 쓰러져야 끝나는 전쟁터였다. 


그런데, 쓰러진 건 다름 아닌 세아 엄마였다. “욕을 하시면 욕을 듣겠습니다. 모욕을 하셔도 그대로 듣겠습니다.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세아 엄마를 선두로 학부모들이 같이 주저앉았다. “우리 아이 키우며 하나씩 포기한 게 열 손가락이 넘습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도 포기하는 저를 보며 다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는, 아이 학교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고. 학교는 안됩니다. 부모로서 꼭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노는 모습 보고 싶습니다. 당신들도 누군가의 부모이지 않습니까. 도와주세요.” 그때, 반대편 주민들도 무릎을 꿇었다. “우리도 좀 도와주세요. 제가 스무 살 때부터 돈 모아 겨우 산 아파트입니다. 그것도 대출받아서요. 집값 좀 안 떨어지게 도와주세요. 제 반평생을 걸어 놓은 집입니다.” 세아는 엄마를 보며 울었고, 엄마는 운동장을 보고 울었고, 운동장 모래는 아직 차가웠다.  


창문 너머로 비추는 커다란 목련, 흩날리는 목련 잎에 맞춰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봄이다. 세아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학습지를 같이 풀어 나갈 친구가,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생겼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눈을 뜨면 어딘가 나서야 한다는 사실은 세아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 허공으로 커다란 목련 잎이 흩날리고,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로 앙상한 뼈대가 드러날 때면 한기를 느꼈다. 그 겨울. 자신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선 엄마가 세상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리에서 쉬이 떨쳐지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봄도 두 개인 것 같아. 그렇지 않니. 여름을 향해가는 봄도 있지만 겨울을 잊지 못한 봄도 있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순택 씨의 소확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