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욱근 Mar 23. 2020

화가 난 사람을 풀어주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쉐어 하우스에 살고 있는 직장인 김정석 씨는 야근을 끝내고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식구들은 이미 잠에 들었는지 불 꺼진 거실에는 적막함이 흘렀다. 그는 허기를 느끼고 간단히 라면이나 끓여 먹을 요량으로 부엌의 전등을 켠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싱크대 위에 각종 냄비와 그릇들이 마치 버려진 조개껍데기 마냥 쌓여 있는 것이었다. 그릇 표면에 붙어 있는 바싹 마른 파는 설거지가 방치된 시간을 가늠케 해주었다. 그는 수납장을 열어 더 이상 라면을 끓일 만한 냄비가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렇게 십 여분이 흘렀을까 큼지막한 냄비와 접시, 그릇을 다 씻고 수저를 헹구고 있을 때였다. 그의 발 끝에서 냇가에 발을 담근 듯한 촉촉한 기운이 맴돌았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숙여보니 싱크대 밑 수납장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급히 수납장을 열어젖혔지만 이미 수납장 아래의 그릇 위에는 허연 비눗물이 찰랑대고 있었다. 


김정석 씨가 설거지거리가 가득한 싱크대를 보며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다. 사람에게 기대하는 일이 있거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우린 실망감을 느낀다.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거나 직장 동료가 맡은 일을 제때 끝내지 못했을 때가 그 예이다. 이러한 경우 친구를 기다리거나 동료가 끝내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해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돌아오는데, 이때 실망감이 분노로 바뀌는 것이다. 김정석 씨가 설거지를 하던 중 수납장 그릇에 고인 비눗물을 보며 느낀 감정은 짜증이다. 이는 보통 하고자 하는 바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발생한다. 밤새 준비한 발표가 너무 떨려 심하게 더듬어버린 경우 또 리포트 마지막 단락을 쓰다가 노트북 전원이 나갔을 때가 그 예이다. 앞의 사례처럼 환경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 뚜렷한 가해자가 없기에 답답함은 배가 된다.


먼저, 사람을 통해 얻은 화를 풀어주는 방법은 화가 난 사람을 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원인 제공자의 사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사과에 화려한 말솜씨로 변명을 첨가하거나 학자의 마인드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면 안 된다. 화는 불과 같아서 어정쩡한 부채질은 오히려 화를 키우기 마련이다. 사과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최대한 낮추며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는데, 그 노력은 ‘저렇게 까지 불쌍하게 사과를 하다니’라는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여야 한다. 물을 부어야 불이 꺼지듯, 화와 상극의 마음인 미안함이 생길 때 비로소 화가 풀리는 것이다.


자신이 원인 제공자가 아니거나 또 환경처럼 특정한 원인 제공자가 없을 경우는 우리는 ‘동조’와 ‘복수심’으로 화를 풀어줘야 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라는 말이 있듯 화도 함께 나누면 줄어들 수 있다. 뚜렷한 해답이 없는 경우일지라도 분노에 공감하고 함께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조와 공감으로 해결되지 않는 화는 최후의 선택으로 ‘복수심’을 이용해야 한다. ‘열심히 해서 저 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지’ 라던지 또는 싱크대 밑에 고인 비눗물을 보고 ‘그래, 누가이기나 해 보자’라는 마인드로 주방 대청소를 하는 것이다. 지나칠 경우 폭력성과 과격함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적절히 만 사용한다면 자기 발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루에 수백 번도 더 바뀌는 사람의 마음을 의도대로 움직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주변에 예민하게 되는 화가 난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마음은 물고기처럼 일부러 잡으려 할수록 더 잡히지 않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참으려 애를 써도 새어 나오는 눈물처럼 말이다. 마음은 무작정 손으로 잡으려 하기보다는 물고기처럼 미끼로 유인해야 한다. 화가 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미끼는 ‘미안함, 공감, 복수심’과 같은 사람의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징크스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