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여행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발이 닿을 때가 있다. 생각에도 없던 곳은 콜롬비아였다. 그리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생뚱맞은 바랑키야라는 곳에 오게 됐다. 순전히 한 친구 덕분이었다. 바랑키야라는 제천의 어느 백운면 시골마을처럼 한적한 곳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내 의지로 온 게 아니었다. 순진하게 한 친구만 믿고 온 곳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바빴고 바빠서 나를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바랑키야에서의 보내는 시간은 참 심심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튿날 밤 터미널로 향했고 메데진 행 표를 예약하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좌석이 없었다. 덕분의 나는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야만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참아왔던 화가 터져버렸다. 사람 하나 믿고 온 콜롬비아가 내게 배신하는 순간을 마주한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스페인어는 할 줄도 모르고 그 친구는 내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으니까. 아까운 택시비를 날렸다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숙소 주인은 '왜 다시 돌아왔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에게 숙소로 돌아오게 된 사정을 말했다. 그런데 이 날 나는 숙소로 돌아온 상황에 감사했다. 모든 화가 누그러들었다. 이튿날 밤 함께 대화했던 어린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놀라서 나를 바라보고, 어린 소녀의 가족들 역시 나를 반겨줬다. 우리는 호스텔 문 앞 계단에 앉아 살치 파파와 맥주 그리고 과자를 나눠먹었다. 그들 중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나 역시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전날 밤 번역기로 대화를 주고받은 어린 친구는 다시 번역기를 꺼내들었고, 우리는 모든 대화를 번역기로 나눴다. 그런데, 번역기로 대화하는 일이 한두 번이야 번거롭지 않지만 몇 시간을 번역기로 대화하다 보면 서로는 지치게 되어있다. 나는 항상 지치는 상대방의 입장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어언 11개월 정도가 다 되어가는데 그중 말이 통하지 않았던 적이 절반 이상이 넘으니까 나는 그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도 그랬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기반으로 번역기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멋있게 옷을 차려입은 아줌마가 나타났다. 멋진 두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화려한 귀걸이와 선글라스가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너무 멋있었다. 그렇게 다섯 명의 여자가 계단에 앉아 수나 판이 벌어진 거다. 다들 너무나도 따뜻했다. 다들 너무나도 친절했고 아름다웠다. 그 순간 행복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터졌던 화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대체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시간 덕분에 모든 게 나의 모든 마음은 평온해졌다. 그러던 중 멋쟁이 아줌마가 다음날 자신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아무 계획도 없었던 나는 당연히 좋다고 했고, 아침 7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놨다. 다음날 우리는 함께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우리는 모든 대화를 번역기를 통해서 해야만 했다. 누구 하나 번역기를 쓰는 것에 지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