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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Aug 18. 2022

모르는 문을 기꺼이 열고 들어가는 일에 대하여, 윤석원

30분 인터뷰 - 윤석원


언제나 저는 위인전 보다 동네 친구들과의 술래잡기, 신기해 보이는 가게에서 만난 사장님들과의 짧은 이야기들로 인생을 배워왔습니다. 불확실성과 불안함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세상 밖으로 더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우리 30분만 이야기합시다.




2022.06.25 10:30 스타벅스 신당점


미술을 배운 지 세 달이 되었고, 화실에서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수강생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다.

이 화실엔 갈 때마다 이야기가 넘쳐났다. 매번 배경음악처럼 틀려져 있는 라디오에서도, 

눈과 손은 각자의 그림을 향하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했던 화실 쌤들의 이야기도(화실에서는 강사와 수강생 모두 서로를 oo쌤이라 부른다.)

내 그림을 손봐주시며 두런두런 나누었던 윤쌤과의 이야기도. 별 이야기가 아닌 게 대부분인데, 난 갈수록 그림 그리는 일보다 이야기 듣는 일이 재밌어서 화실에 가는 게 즐거웠다. 


하루를 꼬박 새워 들어도 질리지 않을 인생사를 가진 이들이 오랫동안 그를 찾고, 배우고 있었다. 

일정한 거기를 두고 가르치는 세심한 사려 깊음일까. 멋들어진 그의 작품으로 보이는 미술 세계일까. 

과연 그의 기운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나의 미술 선생님이자, 10년 차 화가이자, 23개월 아이의 아빠. 동시에 화실을 운영하는 사장님인 사람을 붙잡아 30분만 시간을 내어달라고 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과거에 비해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개인 화실을 올해 초에 오픈해서 운영하는 화두가 크고, 그걸 잘 운영하는 게 최대 관심사이다. 똑같은 무게로 주말부부로 전환되면서 아이와 아내, 가족 생각도 많이 한다.

감사할 일도 너무 많다. 사건사고 없고, 빠르진 않지만 야금야금 잘 되어가고 있다. 축구선수 이영표가 한 말도 생각난다. 지금 엄청 노력하면 그 결과가 3년 뒤에 나타난다고.






Q. 지금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 일을 하기 전과 후 삶의 변화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변화인가 궁금하다.


현재 나에게 일은 육아와 화실 운영이다.

육아를 하다 보니 경제적인 안정성을 가질 수 있는 일 중,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화실 오픈을 결정했다. 화가로서 작업을 병행하면서 올해 3월에 화실 사장님이 되었다. 사장님이 되어보니 행정적인 일들이 확실히 많더라. 여태껏 그림 캔버스를 가림막 삼아서 세상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 있다가 그게 치워지고 정면으로 보니 세상이랑 닿는 접점이 되게 많아졌다고 느낀다. 처음 도로로 나가서 운전해 보면 세상의 절반만 살았구나 싶은 느낌이 들 듯이. 차가 다니는 도로만의 공간, 기름값, 생명과 안전, 보험에 신경 써야 하지 않나. 화실을 하면서 세상 속으로 더 들어왔다는 생각도 든다. 책임감도 막중해졌고.


화실을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경제적인 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준비하려니 잘못 살았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2-30대에 더 준비했어야 했나 싶었다. 우리는 과거의 무언가를 바꾸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얻고 잃는 건 같은 것 같다. 


육아의 일도 정말 크다. 아기를 낳고 학교 강의를 나갔는데 모든 게 되게 조심스러워졌다. 아기를 낳으면 부모가 죄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죽고 나면 우리애는 누가 돌봐주나? 돌봐는 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야 될 것 같고. 자식을 가지니까 생기는 복합적인 마음이 있다.






Q. 변하지 않은 것도 있나.


원래 추진력이 좋은 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 '새가 하는을 나는 것이 새의 일이듯 그걸 못할 때 너무 힘들어서, 날고 싶어서 그랬어"라고 주인공이 말한다. 이렇듯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나에겐 본능적인 일이다. 못하면 괴로운. 현실적인 일들로 추진력 있게 치고 나가는 힘이 죽은 줄 알았는데, 주말부부로 전환되며 쓸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많아지고 화실 운영이 조금씩 안정화되니, 죽은 줄 알았던 어떤 의지나 열정이 다시 느껴진다. 스스로에 대한 일말의 확신을 다잡은 느낌. 확신은 원래 늘 다시 다잡는 일이 아닌가.





Q. 어떤 것이 윤석원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나.


불안감. 화가의 일이 안정성이 보장된 일이 아니다 보니, 하루 이틀 게으르고 노는 건 티가 안 나는데 몇 달 뒤에 폭망하는 결과가 나오는 걸 안다. 그래서 불안하다. 큰 동력이 되기도 하고. 

어릴 때는 기대감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꿈을 강렬하게 쫓는 대단하고 유명한 작가가 되는 열망이 강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과연 추구하는 게 그런 것이었을까? 생각을 한다. 물론 잘 안되어서 차선책으로 방향을 돌렸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슈퍼스타가 되고 난 다음을 생각해 보면 뭐가 없다. 과연 그게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Q.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있나.


2020년에 결혼과 출산, 운전을 시작했고, 집을 이사했다. 큰 사건들이 한 해에 다 일어났다.

가재가 껍질 허물을 벗을 때 몸집이 커지는데, 허물 벗은 첫 생살이 엄청 연약하다고 하더라. 위태롭고 연약한 순간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재나 사람이나.



Q. 그럼에도 잃지 않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작업하는 마음.

이 대답은 사실, 내가 작업을 놔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변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대답한다.







Q. 마지막으로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듣고 싶은 이야기는, 숨겨져 있던 이야기. 

숨겨져 있다가 드러나서 고귀하고 따듯한 이야기들. 대단하고 스펙터클한 이야기 말고. 잘 가꿔진 정원에 핀 꽃 보다, 산속에 돌봐주는 이 없이 혼자 핀 꽃을 볼 때의 대견스러움 또는 짠함. 그런 걸 들을 때 기분이 좋더라. 여태껏 나는 삶을, 극복해야 하고 전략을 세워야 하는 전투처럼 대하곤 했는데, 요즘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마라톤 하면서 경치 좀 본다고 결과가 크게 안 달라지듯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기를 낳기 전에는 생명을 가진 것들이 살아가는 작동 원리를 궁금해했다. 마른 식물이 죽고 난 후 새로운 식물이 자라나고, 선대가 후대를 양성해서 세대가 이어지는 일들. 인간과 생명의 삶의 원리가 신비로웠고 내 작업에 담고 싶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은 생명과 너무 가까이 있게 되는 일이다. 바깥에서 늘 관조하다가 그 안에 들어와 있으니 관조를 할 수 없어서 흥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최근 작업 방향을 빛과 물질로 옮겨왔다. 사물이나 공간이 빛의 영향을 통해서 시각적인 변화를 주고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감상을 일으키는가. 그러니까 더 감각적인 부분으로 옮겨갔다. 빛이 산란하거나, 대기의 흐름이 순간 정지하는 느낌. 그 순간에 쾌감을 느끼는데 작업을 통해서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다. 당신은 느껴보지 못한 이 공간에서 어제 누군가는 삶의 영성을 느꼈을 수도 있고, 쾌감 또는 낭만을 느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꼈는지 전달해 주고 싶다.



About light and matter-S1  2022



Q.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소쌤이 이 인터뷰를 통해서, 얻고자 했던 바를 얻지 못하고 설사 다른 것들을 얻는다고 해도, 기쁘게 생각하고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인터뷰 매거진인 IVE 매거진에서 본 문장이 떠오른다. 


“개인이 한 주체로서 독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우리가 속한 집단 안에서 부분의 의무와 역할도 외면하지 않을 때 현실화된다" 고. 우리는 얼마나 나 자신이고 싶어 하는 동시에 딸이고, 가장이고, 학생이고, 선생이 되어야만 하는가. 그는 어렵고 무거운 일이지만 참으로 귀해서 결코 발로 차 버릴 수 없는 일 같다고 말했다. 


자기만의 방에만 머물지 않고, 전혀 모르는 방의 문도 기꺼이 열고 들어가는 일. 여태껏 공들여 만든 정원이 흐트러지고 부서지더라도 새로운 꽃과 거친 나무 심기를 개의치 않아 하는, 

윤석원만의 삶의 낙관이 모두에게 함께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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