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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Oct 02. 2022

명상과 지겨움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변혜민

30분 인터뷰

언제나 저는 위인전보다 동네 친구들과의 술래잡기, 신기해보이는 가게에서 만난 사장님들과의 짧은 이야기들로 인생을 배워왔습니다. 불확실성과 불안함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세상 밖으로 더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우리 30분만 이야기합시다.


이번 호는 처음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라기 보다 할말이 많은 편지를 주고 받는 것 같았다. 요즘 잘 지내는지 안부를 다섯가지 질문으로 묻고,

질문에 대한 빼곡한 답과 몇 장의 사진을 회신받았다.




Q. 요즘 어떻게 지내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요새 시시하고 재미없게 살려고 한다.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시시하게 사는 것까지 노력해야 하나 싶은데 시시하게 사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툭 하면 자극을 찾아나서니까.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고, 더 오래 달리고 싶고, 더 재밌는 걸 보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다. 이런 자극이 필요하지만 자극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조용하고 평안한 시간을 많이 누리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 몰입과 휴식은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몰입은 휴식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그것을 향해 나아간 이 단순한 흐름에 나를 맡긴다. 이러한 시간이 아주 길어지거나 다른 이의 간섭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피곤하다. 지금 하는 일이 그렇다.


Q.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 이 일을 하기 전과 후 삶의 변화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변화인가 궁금하다.


간호사로 6년째 일하고 있다. 아주 놀랍다. 너무나 명확한 직업이라 일한 기간에 비해 스스로 간호사라고 인정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1년 남짓하다. 다른 사람에게 간호사라고 말하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내 안에는 아주 많은 모습이 있는데 직업 하나로 소개가 끝난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묻힌 나의 다른 다양성들이 매우 슬퍼하지만 가장 큰 부분임에는 반박할 수 없다. 6년간의 시간을 들여다봤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을 테다. 변화도 크다. 주거지, 수입, 능력이 달라졌다. 당연히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도 변하며 정립해가고 있지만 이 부분은 내가 삶을 살아가며 바뀌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병원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래도 쓰고 보니 핑계 같다. 사람이 피를 흘리거나 죽는 것에 대해 침착해지고 있는데 그러지 않은 사람도 많을 테니.


Q. 어떤 것이 당신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나.


처음에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 계속 할 수 있었다. 25년 간 부산에서 자고 나란 나는 독립을 하고 싶었고, 서울이면 좋았다. 그래서 서울권 대학병원에 지원을 했고, 입사를 하게 됐다. 거기에 웨이팅(발령 대기) 기간 동안 다녀온 여행에서 나는 걸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다 사막마라톤을 알게 됐고 참가하기 위해 참가비, 비행기값 등으로 약 700만원 정도가 필요했다. 넉넉잡아 1년 일하면 모을 수 있는 돈이라 1년을 채웠다. 그 이후로는 일이 재밌어졌다.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도, 신규간호사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친구들과 노는 것도. 일하는 고밀도의 8시간(혹은 그 이상)은 휴식이자 명상이다. 현재도 같은 생각이나 조금 지겨울 때가 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이 많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Q.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가을에 먹는 무화과.

언젠가 보내올 친구의 문장.

생일 선물을 골똘히 고민하는 시간.


Q. 마지막으로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또 들려주고 싶나.


말하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렇고, 다른 이도 그렇다.

그래서 이 인터뷰가 참 좋다. 표면에 나와있는 것들을 먼저 받아들이겠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심지어 널리 퍼트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맙다.




이 사람이 앞으로 받게될 문장과 무화과는 어떤 모양일까?

자신의 발이 어떤 모양인지 꾸준히 고민하는 사람, 그가 떠난  여정에서 다양한 문장과 무화과를 마주치게   같았다.  많은 문장과 무화과를 담은 그의 미래를 기꺼이 상상해본다.


이번호를 발행하며 이제야 조금은 내가 여기 담고싶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찰나를 담고 싶었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지금, 그리고 훗날 내가 이때는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하고, 이야기를 보는 이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곳이 되었으면 했다. 아무렴 상관없겠지만. 여덟명의 나의 과거 인터뷰이, 그리고 앞으로의 인터뷰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여덟번째 30분 인터뷰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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