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ing Ko Jun 04. 2022

캐치 미 이프 유 캔

오필리아 영어교실(4)

“저기요, 여기 떡볶이 2인분하고 순대 1인분이랑, 어… 오뎅도 2개 주세요. 그릇에 국물 좀 담아주시고요.” 두툼한 천막으로 만든 포장마차의 입구를 힘없이 밀어내고, 파란색의 플라스틱 원형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였다.


 그리고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수중에 들고 있는 돈만 야금야금 빼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용돈 같은 월급 몇 푼을 받기는 하지만, 그 돈 가지고는 길거리에 나앉은 지금 상황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장 어디서 잠을 때울지, 일단 그것부터 생각해야 했다.


문득, 혜숙은 머리 한편에 어머니가 생각났다. 정 안 되면 거기라도 갈까. 하지만 이내 머리를 내저었다. 가뜩이나 그녀를 시도 때도 없이 염려하고,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당당하게 집 나왔다고 고백할 자신은 없었다.


“엄마, 엄마 안 먹어요?” 이쑤시개 끄트머리에 묻은 고추장 양념을 핥아먹으며 혜숙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는 현우였다. “엄마 좋아하는 떡이랑 파 같은 거 많아요. 얼른 먹어요.” 더 이상 건져 먹을 어묵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뒤늦게서야 혜숙을 챙겨주는 그였다. “엄마는 괜찮아. 너 많이 먹어. 배고프겠다. 국물 먹을래?”


남들은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 상황이 사실 두 모녀에게는 그리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뉴스에서 오르내리는 ‘생활고’라는 단어에 누구보다도 육체적으로 친숙하고, ‘먹을 게 없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 정말 위장에 집어넣을 양식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그들에게 포장마차에서의 식사는 월급날 레스토랑으로 가족들끼리 외식 가는 것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다 먹었니?”

“응. 이제 먹을 거 없어. 배불러.”

“슬슬 일어나자. 목욕탕이라도 가서 씻어야지. 저기요. 여기 계산이요.”


무거운 엉덩이를 이끌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이밀었다. 수고하세요. 현우의 손을 꼭 잡고, 햇빛에 탁하게 색이 바랜 포장마차 입구를 힘겹게 열어 젖혔다.


“야 이 년아.”


섬뜩한 목소리였다.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였다. 지난 10여 년을 지옥으로 이끌었던 그 목소리였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구멍에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밀 것만 같은 끔찍한 목소리.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싶은 그녀였다. 걸핏하면 울곤 했던 현우도 아무 말이 없었다. 술 취한 그의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던 그의 아들이었다.


“도망을 가? 씨발년이 쳐 돌았나?” 혜숙의 고막에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쏟아지는 욕설은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혜숙은 현우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지금이 아니라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연옥의 끄트머리에서 남은 생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혜숙은 현우를 들쳐 안고 골목길을 질주했다.


“아아아악!” 귓가를 찢는 듯한 외마디 비명이 온 동네를 헤집었다. 잡히면 죽는다. 저 인간이라면 나를 죽일 것이다. 머릿속에 정돈된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도망쳐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어깨에 짊어진 작은 손가방과 가슴팍에 파묻혀 하염없이 울고 있는 현우의 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생존에 대한 갈망이 그녀를 움직이게 할 뿐이었다. “씨발년아!”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에라도 덜미를 잡힐까 두려워 사정없이 골목길을 내질렀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장마차, 그때 그 자리, 그곳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