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왜성

프롤로그

by Writing Ko
2023.09.XX
갑 (인)
을 (인)

멍-한 상태였다. 너무도 정밀해진 집중 탓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던 탓이었다. 앞에 놓인 펜을 이리저리 만지작대면서, 볼펜 끄트머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곳이 조금 후덥지근한 탓일까, 내 손끝이 조금 달아올라서일까. 검은 잉크 한 방울이 아주 미세하게 그 끝에 송글 맺혀있었다. 계약서에 날인을 하게 될 펜촉의 끄트머리의 질감을 상상하며, 종이 귀퉁이에 조심스레 잉크를 정밀하게 소분했다. 제1항... 제2항... 여태껏 살면서 근로계약서라는 걸 적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왠지 모를 묘한 기류가 어깻죽지를 시큰하게 감싸 올렸다. 아무렇지 않은 듯, 애써 침착하게 펜대를 휘휘 돌리며, A4 두 장 분량의 계약서를 서늘한 시각으로 차근히 훑어보았다.


"계약서는 다 읽어보셨죠?"

원장님의 목소리에 볼펜을 다시 바로잡았다. 계약서의 내용은 별 게 없었다. 그냥 강사로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근태에 대한 내용과 기본적인 서로 간의 예의(이를테면 퇴사 시 몇 개월 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그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네네. 다 읽었습니다." 머쓱한 듯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스테이플러로 찍은 왼쪽 상단 모서리를 부랴부랴 추켜 잡아 올렸다.

단기 계약서

수습 기간이라는 명목하에 쓰인 3개월짜리 단기 계약서. 학원에서 일한 것이라고는 대학생 때 3년 동안 학교 근처 동네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게 전부였던 나에게 학원 측에서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좋게 말하면 '수습 기간'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내가 하는 수업이나 행동 따위가 원장 선생님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언제든지 내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문'과도 같았다. 학원가에서 의례적으로 그런다고 하니 별말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전장치 없는 위험한 서커스를 강요받는 묘한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뒷면에 성함이랑 사인하시면 됩니다."

"아 참, 오늘이 며칠이죠?"

"23일입니다."

연, 월, 일과 이름, 그리고 내 이름의 뒷글자를 딴 조악한 서명까지 빈 공간에 정성스레 채워 넣는 것을 마치고서야 비로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점지되었던 다소 슬픈 천명을 받아들였다.

"같이 잘 일해봐요,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그리고 이내 맥이 탁 풀렸다. 위 말하는 원가에서 통용되는 삶의 문법에 내 자신을 끼워 넣는 첫 순간이었다.


#1 '다소 슬픈 천명'

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매 학기마다 방학 때면 매일같이 당신께서 자작하신 수학 문제를 풀게 하셨다. 단순히 맞고, 틀리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초등학생이라 생각하고 나를 가르쳐봐라."였다.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며 누런 종이 위에 무른 연필로 난잡하게 풀이과정을 쓰고, 지우기를 수백 번, 어느새 본래 색깔을 잃어버린 검은 종이가 될 때까지 나는 그 문제를 오롯이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지만 11년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생경한 긴장감에 손톱 끝이 피로 얼룩질 만큼, 나에게는 그 상황을 내하는 것이 너무 고달픈 일이었다.


고작 10살이 조금 넘은 코찔찔이한테는, 방학 때만 누릴 수 있는 달콤한 휴식을 약탈당한 채, 매일매일 가해지는 채찍질을 맹목적으로 견디기엔 가혹하기만 요구였고, -지금 생각하면 내가 먹고살 수 있게 된 이유가 됐지만- 그때 당시의 내가 받아들이기엔 퍽 버겁기만다.


아버지는 매일 저녁이면 경력이 오래된 무대 기획자처럼 그림이나 종이를 받쳐놓는, 화가나 만화가들 같은 그림쟁이들이 쓰는 이젤(easel)에 능숙하게 화이트보드를 고정시키고선 내가 서야 할 무대를 세팅하셨다. 화이트보드 앞 간이 테이블에는 3색 보드마카를 올려놓으시고는 "빨리 나와라."라고 스탠바이 신호를 내렸다. 하지만 나는 무대 위의 빛나는 별이 아닌, 수사반장과의 독대 속에서 쏟아지는 심문을 견디는 일종의 피의자의 신분으로 무대에 올랐다. 아지는 질문과 압박 속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 그게 내 초등학생 시절 방학의 전부였다.


일반적인 초등학생의 삶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느 아이들처럼 하기 싫다고 반항하다가는 속옷바람으로 야밤중에 내쫓길 수도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매일 밤마다 아버지를 가르치는 '꼬마 선생'의 책무를 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삶이 1년, 2년 누적되어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보드마카를 쥐고 칠판 판서를 하며 아버지께 내가 공부한 내용을 어설프게나마 설명할 수 있는, 강사의 맹아(萌芽)가 되었다. 물론 새벽 3시, 4시까지 이까짓 거 하나 설명하지 못하냐고 타박받고, 쿠사리(야단)를 먹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야말로 지금의 강사로서의 삶을 살게 한, 과장하자면 마치 '나'라는 소우주의 탄생과도 같은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강사라는 길을 걷게 만든 일종의 '천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2 먹고살기 위해 강사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가 전국을 강타하고, 모든 업종이 저녁 10시가 되면 문을 닫던 시기였다. 전역 후 독서실 총무로서 오후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하며 단돈 30만 원을 받던, 나름 독서실의 고정석도 받고,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 좋은 윤택한 환경에 몸 둘 바 모르던 나는, 갑작스레 반토막 난 월급에 말 그대로 생존을 위협받았다.

밤 10시까지 일 할 수 있으면서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일을 찾던 나는, '알바몬'과 '알바천국'을 틈나는 대로 들락거리며 하루에도 몇 시간이고 구직에 열을 올렸다. [일최대39만/셔틀제공]쿠팡알바/원하는날/당일/주말/단기/야간/포장/물류상시모집 럼 홈페이지를 어지럽히는 스팸 메시지와도 같은 문구들에 정신이 아득해지기를 몇십 번이었고, 다가오는 삶의 공포는 목을 옥죄였다. 가뭄에 콩 나듯 OO학원 파트강사(영어) 모집 같은 공고가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관련 경험이 일천했던 나로서는 선뜻 지원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거라도 안 한다면 당장 다음 달 월세 내기도 버거울지도 몰랐기에 뻔뻔스럽게도 '지원서 작성하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운칠기삼이라고 했던가. '운이 70, 기세가 30'이라더니 지원서를 돌린 지 일주일 조금 넘었을 무렵, 대뜸 모 학원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 흔한 시뮬레이션 강의 하나 없이 단지 이력서의 사진이 믿음직스럽다는 이유로 -그때도, 지금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사유였으나- 단박에 채용이 되어버렸다. 전후 사정을 듣고 보니 원래 가르치던 선생이 코로나로 인해 예정된 유학이 취소되면서 대학원을 가기로 했단다. 당장 가르쳐야 하는 고3이 있었고, 수업이 펑크 나면 안 되니 부랴부랴 구인을 하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는 일개 대학교 3학년 주제에, 그 동네에서는 꽤나 유명한 학원의 파트타임 영어강사로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놈의 인생이 참 얄궂기도 하다. 수업 시수별로 책정된 시급을 받던 나에게, 1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원장은 뽑을 만한 국어 강사가 없으니 내가 대신 국어 수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시급이 조금 오르는 대신 주 5일을 수업하는, 말이 좋아 파트타이머였지 사실상 전임 강사에 준하는 스케줄이었다. 당시의 나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무모한 욕심에 흔쾌히 이 제안을 수락했고, 그로부터 약 1년 반을 고3을 가르치는 국어강사로서, 일개 대학생이 이런 중책을 맡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업량을 맡으면서 꽤나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


#3 회사원으로서의 삶에 권태를 느끼다.

2023년 여름, 전임 강사로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원장의 유혹을 뿌리치고서,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모 외국계 기업에 기술영업직으로 취업했다. 당시에는 취업을 준비하는 평범한 대학생으로서 기업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종사하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는 만져보지도 못 한 상당한 액수의 급여와 함께, 적어도 예전처럼 돈이 없어서 배를 곯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마음 한편에 위치한 얕은 안도감 때문에, 그것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업일지라도 입사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심리적 안정감은 입사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무너져 내렸다. 반복되는 그저 그런 업무와 선임들 에서 쉴 새 없이 먹어야 하는 눈칫밥, 그리고 팀의 막내로서, 그리고 영업사원으로서 필연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크고 작은 술자리에 넌덜머리가 나버렸다. 별의별 이유로 회식에 참여하고, 고객사 미팅을 빙자한 인사치레식 술자리에 간이 터져나갔다. 무의미하다 느껴지는, 반복적으로 권태롭게 두들기는 노트북의 자판과 무감에 젖어드는 엑셀의 촘촘한 눈금자를 눈알이 빠져라 들여다봐야 할 때마다, 나의 심열은 빠르게 식어만 갔다.


결국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열심히 했던 일을 하기 위해 나에게 부여된 '천명'을 수용했다.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저마다 다른 색깔로 분칠 하며 저마다의 가루를 흩날리는 그 모습을 감내하려 했다. 칠판에 휘갈기며 써 내려간 문장의 서술부와 이를 수식하는 모든 형용사와 부사들을 끌어안으며 조심스럽게 문장을 수놓으려고 애쓰는 나 자신을 보며, 오랜 시간 동안 오롯이 나를 위해 잘 짜 맞춘 조물주의 농간에 놀아나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회사를 나섰다.


#Microcosmos

그리고 이곳, 학원, 직사각형의 테이블 위에서, 그는, 거대한 유기체가 정의 내린 무형의 폭압적인 질서에, 나 자신이 서서히 '백색왜성'이 되어가고 있었음을 피부 끝에서 목도한다. 소멸되어 가는 별의 아뜩한 너머에는 이내 새로운 소우주가 열리고, 그 우주 속 삶의 질서가 별과 별 사이에 피어오르고, 흐르기 시작한다. 숨결처럼 맴도는 회상의 무리들이, 어지러이 별 무리들과 함께 어우러져, 아주 미세하지만, 생명의 박동이 느껴지는, 몹시도 생경한 그 광경이 그의 눈망울에 박혔다. 이내 우주의 신호에 맞춰 태동하는 별빛을 올려다보며, 그는 슬며시 웃어보았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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