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탐구 르포
"학생들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아요. 대개 6~7등급 정도니까.
원장 선생님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 때가 있다. 정작 나조차도 고3 때 6월 모의평가에서 특정 과목은 전체 인구의 절반인 백분위 50%, 표준정규분포의 중간에 속하는 5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형편없는 학생이었음에도, 이전까지는 접해보지 못한 상상 그 이상의 등급에 말문이 막혔다.
"모든 과목이 다 그 정도 등급인가요?"
"네, 특성화고 학생들이잖아요."
특성화고. 내가 어렸을 때는 속칭 '실업계'라고 불렸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는 소위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로 낙인찍히던 때였다. 개중에는 성적 좋은 학생들을 일찍이 장학금으로 유치했던 '한국디지털미디어고' 같은 특이한 학교도 있었지만, 거의 대다수는 '공고'와 '상고'로 대표되는 학교였다. 내가 나고 자랐던 안산은 '학교를 오토바이로 통학한다더라.'와 같은 낭설도 심심찮게 퍼지곤 했으니, 내 주변 사람들은 기를 쓰고 어떻게든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했었다. 간혹 들리는 소문으로는 '어디 학교 전교권 학생이 실업계 가서 사고를 크게 쳤다더라.'라는 하등 근거도 없고, 증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는 그럴싸한 유언비어가 퍼지던 때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의 특성화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그런 편견에 맞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애들은 참 착해요. 가끔은 이렇게 순수한 학생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요."
학생들이 등원하는 5시부터 6시 언저리에 교무실에서 타이핑 작업을 하다 보면, 교무실 일대가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하다. 학생들이 수업에 관련된 질문을 하기 위해서 선생님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며 학구열을 불태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팍팍한 이유로 교무실에 상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사소하고, 어찌 보면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들, 이를테면 학교에서 미술 수행평가 만점을 받았다거나 반 친구들끼리 마라탕을 먹었다는 작은 일들을 신이 나서 즐겁게 이야기하곤 한다.
간혹 잠시 자리를 비운 선생님의 의자에 걸터앉아 신세한탄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담임 선생님이 맡기는 일 때문에 힘들어죽겠다는 둥,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는 애들이 자기 빼고 두, 세명도 안된다는 둥 교무실에 앉아있으면 마치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학생들은 TMI(Too Much Information)를 쉴 새 없이 방출하곤 한다.
가끔은, 요즘같이 일부 학생들이 교육 현장에서 저지르는 패악질이 인터넷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작금의 현실이 도리어 비현실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정도로, 이곳 학생들은 변방 시골의 마음 넉넉한 이웃처럼 참으로 순하다.
"근데 이 친구들이... 상처들이 하나씩은 있어요. 본인들도 알거든요. 인문계 친구들에 비해 공부를 못 한다는 걸요."
이곳 학생들이 일종의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 "저희는 특성화고잖아요." 이 말이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학생들의 내면에 박혀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학습된 이 무력감은 그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대다수는 중학교 때 학업을 자의적으로 중단했던 학생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하나씩 갖고 있다.
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에서 "우리 학원은 특성화고 따위는 신경 안 쓴다."라는 말에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던 학생, "이것도 모르냐?"면서 한숨을 내쉰 강사 때문에 학원 가기가 무서웠다는 학생, "너네는 학교에서 이런 것도 안 배우냐?"라고 은근슬쩍 까내리는 주위 친구들에 상처받은 학생들이 우리 학원에 온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최대한 방어하기 위해 내세우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그리고 자신들의 얄팍한 학업 수준을 조금이라도 면피하기 위한 근거로써 "저희는 특성화고잖아요."라는 말을 애용하는 편이다.
나는 학생들의 그런 말이 몹시도 싫다. 그런 말을 듣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가르친다. 그간 '공부'라는 학생의 업을 다하지 못했을 뿐, 이제라도 하면 뭐든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찬가(讚歌)를 목청껏 부르게 하고 싶을 뿐이다.
"아마 많이 놀라실 거예요. 이런 것도 모른다고? 싶을 정도로요."
물론, 지금도 나는 끝없는 '앎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이 지도의 서쪽 끝에 있다는 사실을 수업 때 알려줘야 하고, 이케아의 나라인 스웨덴이 북유럽 국가라는 기본 상식을 일깨워주곤 한다. 하물며 국어는 오죽하겠는가. '완곡하다'의 뜻을 몰라 문법 문제를 못 푸는 학생과 '인식하다'의 뜻을 몰라 문학 문제를 못 푸는 학생들을 마주 하면서 나는 끝없는 번민과 고뇌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앎에 대한 투쟁을 벌인다.
아마 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하지만 나는 쉬이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 한 편 제대로 읽지 못했던 학생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내면세계에 공감하지 못했던 학생이, 중학교 수준의 기본 단어조차도 몰랐던 학생이 어느 날 "소설이 읽혀요."라고 말했을 때의 그 쾌감을 잊지 못해서, "선생님 덕분에 책 한 권을 제 손으로 사서 읽었어요."라고 말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나로서는 학생들을 떠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의 소우주가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또 한 번 팽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