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공부를 해야 했던 진짜 이유

Villain, 빌런, 악인(惡人)

by Writing Ko

세상의 모든 학생들이 성실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학업에 열심히 매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직사각형의 책상에 외로이 앉아 몇 시간씩 머리에 과부하를 가하는 지적 스트레스를 디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길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12년, 짧게는 고등학교 3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책상 위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 하는 '공부'라는 행위 자체가 반드시 그들의 몸에 맞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면, 학업에 매진하는 것이 으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이렇다 할 목적의식 없이 종국에는 '대학 진학'만을 위한 수단적 행위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부가 절대적 선(善)인가? 그렇지 않다. 반드시 학업 수준이 높아야 할 이유도 없고, 좋은 대학을 가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단정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다. 특성화고 학생들 중에는 태생적으로 이해하고, 사고(思考)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집중력이 심히 부족한 -실제로 ADHD를 진단받기도 한- 학생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학생들의 당수는 학업을 정상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몹시 버겁다. 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듣고, 교과서의 텍스트를 정상적으로 읽어나가는 행위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일종의 '지상 과제'이기도 하다. 이들의 절대다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양한 이유로 학업과는 거리감을 둔 채 살아왔다. 기본적인 사칙연산부터 제대로 하지 못하고, 중학교 수준의 어휘조차 잘 모르는 실질적 문맹에 준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선뜻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놓여있다.


#1 '사칙연산'이 헷갈려요...

가끔 학생들 옆에 앉아서 수업 시작 전에 컵밥 같은 것을 먹으면서 노가리를 까다보면 종종 듣는 말이다. 더하기와 곱하기가 헷갈린다고 하면서, 10%가 0.1이라는 굉장히 단순한 정의가 일부에게는 '오일러 공식'처럼 버겁게 다가오는 듯하다. 이미 11살 무렵에 '수포자'의 타이틀을 얻은 그들에게 방정식과 함수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아니 손조차 댈 수 없는 통곡의 벽과도 같다. 12X7이 84라는 것을 도출하기까지 약 10여 초가 걸리는 학생을 보면서, 과연 이들에게 공부가 목적 없는 선(善)으로써, 대학을 진학해야만 한다는 짐을 얹는 기제로써 반드시 작용해야만 하는가?


이런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할 때면 당연히 부모님과의 상담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자제 분께서 사칙연산조차 버거워하고, '인식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라고 상황을 보고하면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정확히는 학생이 조금이라도 학업을 이행할 수 있도록 '구몬 수학'이나 '눈높이 국어'라도 병행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할 때면, 부모님들은 애써 이를 외면한다. 마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학생에게 부여된 그 모든 책임을 당연한 듯 학원에 전가한다. 그리고는 "대학은 갈 수 있겠죠?"라고 반문하는 모습에서 나는 일종의 절망감마저 맛봐야 한다.


#2 너는 떠들어라, 나는...

각종 매체에서 현대인들의 집중력이 극히 낮다는 사실을 온갖 통계 자료를 인용하며 릴스와 쇼츠 등의 '숏폼'의 폐해를 강조한다. 이런 현실을 가장 피부로 체감하는 게 아마도 교육 현장일 것이다. 50분짜리 수업을 두 타임 진행할 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은 수업에 대한 온전한 '집중'이다. 걸핏하면 발생하는 현실과의 로그아웃, 이를테면 '멍 때리기'와 턱을 괸 상태에서 빠져드는 렘수면 상태의 학생들을 '깨우는' 것이 그것이다. 펜조차 쥐지 않고, 한껏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칠판을 보거나, 담요로 온몸을 감싼 상태로 초점을 잃은 상태의 눈을 바라볼 때면 쥐고 있던 분필을 분지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비일비재하다.


사실 이 정도면 양반 축에 속한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뒷목이 아리다. 핸드폰 뒷면으로 뭐 그리 꽃단장을 하는 건지 수업 때마다 칠판보다도 핸드폰을 보는 빈도가 잦을 때면, 당장이라도 교실에서 쫓아내고 싶곤 하다. 혹은 잠깐 칠판에 판서를 하기 위해 뒤돌 때, 기다렸다는 듯 인스타 DM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대체 이 수업을 왜 듣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어 스스로 괴로울 때도 많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의 그 모습이 초점화되어 부각될 때면, 나 자신이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든 것이 부지기수다.

요즘 학생들이 -몹시 꼰대 같은 말이지만- 이런 행동들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데에는 '재밌는 게 너무도 많은' 것에 기인한다. 무엇인가에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것이 효율성이 떨어지고, 투입 시간 대비 얻어지는 만족감,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모종의 반발 심리가 이들의 집중력을 앗아가고 있다. 스크롤 한 번에 30~40초짜리 영상들의 뉴미디어가 전두엽을 적시는데, 구태여 긴 시간을 투자하며 읽고, 봐야 하는 올드 미디어에 공력을 투입할 필요는 없으리라. '지연 보상'이 아닌 '즉각 보상'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이 읽어야 하는 교과서의 방대한 텍스트와 수능 및 1000자~2000자 내외의 수능 및 평가원 기출문제가 그들의 대뇌피질을 자극시킬 리 만무하다. 기다림이 결핍되어 있는 학생들에게 사고(思考)의 시간을 인내하게 하는 것은 고행(苦行)과도 같다.


어쩌면 우리는 이들에게 악(惡)을 행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학생들에게 "이번에 서울대 간 옆집의 엄마 친구 아들처럼 너도 명문대에 진학해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것은 외려 폭압적 행위일 것이다. 오히려 이렇다 할 목적의식조차 결여된 채 맹목적으로 학교를 통학하고, 비싼 원비를 내가며 일주일에 서너 번을 학원과 집을 의미 없이 오가면서, 자신이 당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위해 이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루틴을 행하고 있는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삶을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악(惡)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현재의 학생들은 왜 악인(惡人)이 되었는가? 그 원인은 산업화의 중흥기를 지나오면서 '학력과 학벌'이라는 레테르에 목을 매었던, 그리고 그 레테르에 구속되지 못한 삶을 '하류 인생'이라 칭했던 '우리 모두'다. 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라고, 학벌로 인해 보상받게 될 유무형의 가치가 내 인생을 보장해 줄 거라고 믿고, 믿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악인을 만들었다. 나 역시도 그런 레테르의 시류에 편승하여 대학만 가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맹신으로 고등학교 3년의 시간과 재수(정확히는 반수), 삼수의 시기를 입시에 바쳤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취업 잘 되는 과를 가지 못하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내게 주어진 그 시간들을 남김없이 연소하며 살았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이 갖는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명함'과도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 명함이 자신의 앞으로의 삶에서 모든 것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명확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대학 진학'이 지상 목표인 사교육계에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을 보는 시야각을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경험치를 쌓고, 삶의 해상도를 높이다 보면, 인생이 조금은 달리 보일 수 있다. 그 경험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은 다름 아닌 '대학'이다.
설령 명문대를 가지 못했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아낌없이 충실했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다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단순히 학생들의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려서 좋은 대학을 보내겠다는 평면적인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나는 그들이 그들의 삶을 조금은 입체적으로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이라는 시간들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이길 바라면서 분필을 쥔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문단 하나, 글 한 편을 온전히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시 한 편, 소설 한 편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고, 언젠가는 자기 내면의 병증을 치유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학생들이 단순히 텍스트를 얼마나 빨리 읽고,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풀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굴레에 매몰되어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독할 정도로 외로운 시간 동안 교실 너머의 세상을 텍스트를 매개로 들여다보고, 문학가들이 빚어낸 문장들을 이해하고, 작품 속 인물과 대화하기를 꿈꾼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과정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그들을 오랜 시간 괴롭혔던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했으면 한다.

'대학 입학'이 단순히 최종 지향점으로써 기능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학생들에게 가끔은 넋두리를 빙자한 잔소리를 하곤 한다.


공부, 안 해도 된다. 미용에 관심이 있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학생도 있었고, 강아지가 좋아서 애써 대학교를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학업을 중단한 학생도 있었다.
대학이 밥을 먹여주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너의 개성을 찾아야 한다. 그 개성을 찾기 위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입시'라는 과정을 통과하는 것일 뿐이다.
설혹 대학에 가서 생각했던 이상 세계가 없다고 한들 좌절하지 마라. 그 좌절조차도 네가 너의 인생을 살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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