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도 괜찮아요

[무언가 만들어지는 사람 간의 사이 1]

by 오래된 독서가


누군가가 지금 당신의 인생영화는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공공의 적 2’라고 이야기한다. ‘포레스트 검프’, ‘신세계’, ‘테이큰’ 같은 영화들이 아니라,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고, 권선징악이 분명한 영화라서 누가 보았을 때는 그동안 많이 나온 흔한 한국영화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았을 때가 초등학교 때였고, 케이블 방송에서 틀어주면 항상 보던 영화였다.


주인공이던 강철중은 껄렁거리지만, 정의롭고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던 심성을 가진 캐릭터였다. 그러면서 그만큼 상대를 아끼는,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에 비해 캐릭터성은 전형성을 가졌지만, 많이 알지 못하던 어릴 적의 나에게는 지금의 히어로 영화들 같은 인물이었다. 나중에 ‘공공의 적 1’과 ‘공공의 적 1-2’를 알게 되었을 때, ‘공공의 적 2’에서 알게 된 강철중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공공의 적 1’의 강철중은 ‘공공의 적 2’에서만큼 선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아주 속물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래도 나는 강철중이란 캐릭터를 좋아했다. 그랬던 이유는 ‘공공의 적 1’에서도 그려진 강철중이란 캐릭터는 ‘공공의 적 2’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속물적이더라도 보편적인 악을 용납하지 않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공공의 적 2에 나온 악당들에 대해서는 그냥 싫어했다. 그 악당의 배역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냥 나쁜 사람이란 이미지로만 기억할 뿐, 그 배역을 맡은 배우로서는 바라보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배우라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때의 일이긴 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악역을 맡은 배우보다는 선한 역을 맡은 배우들을 더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배우들일 텐데,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본다면 악역을 맡은 배우들 입장에서는 작품의 팬들에게 서운함을 느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르다. 주인공과 대립을 통해 극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배역의 배우들은 오히려 주인공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첨에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영화는 크리스찬 베일의 ‘다크 나이트’였다. 히어로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크 나이트’는 정말로 불후의 명작이다. 이 영화 출시 이후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성을 가진 영화들에 영향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의 악당 역시도 정말 현실적으로 그려졌는데, ‘다크 나이트’의 악당이었던 조커는 다른 영화와 작품들에서 나왔던 악당들과는 다르게 멋있었다. 조커의 배역을 맡은 히스 레저에 대해서도 밉고 싫다는 감정보다는 와 멋있다.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때가 고등학생 때여서 내가 ‘공공의 적 2’를 보았을 때에 비해 조금 더 성숙한 시점이라서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악역에 대한 시선들이 달라졌다. 멋진 주인공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멋진 배역과 캐릭터들을 더 보고 싶었고, 좋아하는 작품이더라도 주인공이 아닌 캐릭터의 팬이 되기도 했다.


나의 달라진 시선은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 ‘빈센조’에서 극을 이끌어 나가는 주연 3인 중 악역을 맡은 옥택연에 대한 시선 역시도 다르게 바라보게 했다. 주인공이 어떻게 하면 악역을 혼내주는지가 아니라, 주인공인 송중기와 악역인 옥택연과의 얼마만큼의 배역 간의 케미를 보여줄지 궁금해하면서 드라마를 보게 했다.


달라진 시선은 내게 다른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정치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시선도 다르게 만든 것 같다. 나는 정치만큼 이분법의 논리가 대중에게 잘 먹히는 영역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권력이라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조직되는 집단 간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상대는 악당이 되어야 한다. 물론 정치인들 중에서 정말로 악당인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그들의 실제 행동으로 평가되어야 하지. 그들이 속한 정당으로 그들이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한쪽 정치세력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상대편은 모두 대한민국을 망치려고 하는 세력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분법과 내가 상상한 프레임과 믿음으로 상대를 바라본 것은 아닌가 싶어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 악역들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보면 일방적으로 나쁜 사람들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정치 뉴스를 볼 때 특정 정치세력을 이야기할 때, 과도하게 그들이 대한민국을 무너뜨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중2병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정치세력의 그 음모를 통해 혜택을 받고 있지 않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반대쪽 정치세력에서도 과도한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런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 양쪽에서 모두 자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서로가 같은 구성원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전에 페이스북 등에 굉장히 개인적인 정치의견을 펼치는 글들을 많이 적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키보드 전쟁을 펼치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도 목소리를 높여 많이 언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우리가 우려하는 사회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했다. 각자 좋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있을 것이고, 과도하게 우려하는 정책들이 실제 적용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도 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에 부합하기를 기대하면서 서로를 비난한다.


더 이상 나는 사람들과 피곤하게 논쟁하고 싶지가 않다. 요즘도 간혹 무작정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에 그냥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나를 볼 때면, 선한 주인공만 좋아하고, 악역과 배우를 구분하지 못하던 내가 떠오른다.


한 가지 결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 있다. 한 정치인 개인과 정당의 정치노선과 구분해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치노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 개인은 얼마든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고, 자칫 그 정치인 개인의 잘못된 행동과 정치사상과 노선을 모두 동일시하여 비난하게 되면, 좋은 정치사상이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노력을 가로막게 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마치 배우가 그저 악역을 맡았을 뿐인데, 그 악역과 배우를 동일시해서 그 악역을 맡은 배우가 서운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아, 물론 정치인과 배우를 그대로 동일하게 놓고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사고가 조금 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2021.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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