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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Jan 12. 2020

힘들어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내가 쏟아부은 모든 시간과 노력들

 수능을 보름 정도 남겨두고 있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일단 끝나면 행복할 것 같다고. 지금보다 훨씬 편하고 자유로울 것이라고. 그러나 수능이 끝난다고 해서 지상 낙원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수능을 망치고 밤새 눈물로 밤을 지새운 이후 나는 다음 날 부모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미 많이 울었기에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이 차에 올라타 부모님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하염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계속 눈물을 흘렸다. 제대로 된 발음조차 나오지 않는 상태로 쉼 없이 오열했다. 그만 울라는 아버지의 호통에 오히려 더 큰 눈물이 났다. 죄인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차에 타고 있는 그 순간이 왜 이렇게 불편하고 길게 느껴졌는지.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앉아 혼자서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혹시나 꿈이 아닐까, 고약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허벅지를 손으로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현실이 맞는구나.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으면 하고 빌었으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 불편한 상황을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에 너무나 참담한 심정이었다.  


             

 "윤아, 밥 먹어야지."               



 점심을 먹으러 나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계속 못 들은 척하며 방 안에서 버텼다. 도저히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방문을 여러 차례 두드리시고 나서야 나는 몸을 일으켜 식탁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집밥이었지만 전혀 입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밥을 거의 다 남긴 채 수저를 내려놓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보았다. 공중파 뉴스는 수능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무슨 과목의 난이도는 어떠했고 올해 입시는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지 등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끔찍하다. 채널을 돌렸다. 바뀐 채널에서는 시끄러운 예능을 방영하고 있었다. 무엇이 저렇게 즐겁고 행복한 걸까. 괜히 화가 났다. 아무리 TV 채널을 돌려봐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았다. 내 시선은 TV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어머니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시자 내 귀는 자연스레 통화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윤이, 수능은 잘 봤대요?" 


              

 어머니는 어렵사리 말을 돌리셨다. 심장 깊숙이 말뚝이 박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듣고 있기가 버거워 TV의 볼륨을 높였다.          


     

 제한 없이 컴퓨터를 하고 있어도 전혀 몰입이 되지 않았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라와 있는 수능 관련 검색어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생각하니 씁쓸함과 고독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며 괴로운 마음을 잊어보고자 했지만 머릿속에는 수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염없이 시간만 보냈다.                     


    

 어느 날이었다. 잠깐 일이 있어 안방에 들어가려고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문 안쪽에서 격해진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언성이 점차 높아졌다. 나는 문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때 들은 아버지의 말씀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수능 성적이 그 모양이라는 건 그냥 공부를 안 했다는 거지."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지 못하고 방에 돌아와 문을 닫았다. 침대에 누워 이불에 몸을 감췄다. 수능 결과에 의해서 내가 지금까지 쏟아부은 모든 시간과 노력들이 그렇게 손쉽게 부정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능을 망쳤으니 난 공부를 하지 않은 거구나. 수능 하나를 잘 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독종 소리까지 들어가며 새벽까지 공부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너무나 서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 공부를 하지 말걸. 차라리 그랬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텐데. 야속한 현실 속에서 부모님이 듣지 못하게 이불로 울음을 감췄다.          


     

 무기력. 수능이 끝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 기간 동안의 나의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수능도 끝났겠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했던 공부를 하지 않게 되니 엄청나게 늘어난 자유 시간에 무엇을 할 지도 감이 오지 않았고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었다. 잘 놀고 있다가도 갑자기 깊은 우울감에 빠졌고 하루 동안에도 감정 기복이 엄청나게 심해졌다.               



 수시와 논술 시즌이 끝이 나니 점차 친구들의 대학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밤새 공부하는 동안 맨날 낮잠 자고 공부도 열심히 하던 몇몇 친구들이 나는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보며 겉으로는 축하해줬지만 속으로는 배가 아픈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신이 있다면 왜 나의 노력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고 이렇게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보여주시는 걸까. 친구들의 행복과 대비되는 나의 불행을 보며 나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수능 전 학교 친구들과 미리 계획했던 여행도 전혀 즐겁지 않았다. 친구들은 미리 약속한 것처럼 아무도 수능이나 대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녀석들은 아무래도 원하는 성적을 거둔 친구들 뿐이었다. 새로운 풍경을 보아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마음속 한 구석은 어딘가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있지만 함께 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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