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 Day A D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윤 Jan 23. 2020

제 6교시 입시영역

내일의 너를 생각해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점치는 것은 수능이 끝난 지 약 1~2주가 지난 후에야 가능했다. 나는 여러 입시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보았고 그제야 내가 정말로 수능을 잘 본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했던 대학들조차 내 성적으로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능에서 총 4문제를 틀려 국어 95점, 한국사 44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만점을 맞았고 서울 상위권 대학에서 탐구 한 과목을 제2외국어 성적으로 대체해주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사를 빼 총 2문제 틀린 것으로 입시를 치를 수 있었다. 즉, 나로서는 이보다 더 잘 볼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많이 알아본 결과 ㅇㅅ대학교와 ㄱㄹ대학교는 학과와 상관없이 프리패스로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고 ㅅㅇ대학교는 교육학과 정도를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 1년 전 수능 성적으로 집 주변에 있는 대학도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보통 정시 원서 지원 시기는 「제6교시 입시 영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만 내 성적은 ㅅㅇ대학교를 제외하고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눈치싸움이나 지원 현황에 목맬 필요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어느 대학교에 갈지, 무슨 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할지를 고민하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치열하게 원서를 고민하는 동안 나는 여유롭게 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큰 장점이었다.           


    

 처음에는 우리 집안의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내 성적으로 등록금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ㅅㄱㄱ 대학교를 고민해보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장 가고 싶은 대학 중 하나인 데다가 등록금 무료에 국내 유명 대기업인 삼성이 재단으로 있는 학교라 자연스레 탐이 난 것이다. 그러나 이 얘기를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단호하게 내 결정을 가로막으셨다.       


        

 "네가 우리 집안 사정을 걱정하는 마음은 고맙지만 대학을 결정하는데 지금의 현실 사정을 고려하지는 마라. 대학은 앞으로의 너의 미래가 달려있는 곳이다. 당장의 상황보다는 내일의 너를 생각하고 등록금 걱정 없이 네가 가고 싶은 대학을 선택해라."    


           

 재수 학원 등록금으로 인해서 집안 사정이 더 어려워진 것에 대한 나의 죄책감이 은연중에 대학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부모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부모님의 조언을 듣고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이 어디일까. 이렇게 유명한 대학들을 사이에 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행복하다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대학인 ㅅㅇ대학교는 내 성적으로 교육학과 밖에 갈 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고민 대상에서 제외시켜놓았다. 지금까지 만나 온 수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처럼 나 자신이 제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고민 대상은 ㅇㅅ대학교와 ㄱㄹ대학교. 수십 년간 서로가 서로의 강력한 라이벌로서 활발한 교류를 주고받는 대학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오직 공부만 해왔던 만큼 대학에 가서는 경험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만큼은 주변 환경이 매우 새롭고 다채롭기를 바랐다. 젊은 대학생들이 숱하게 찾는 그곳. 그래, 번화가로 가득한 신촌 한가운데에 있는 ㅇㅅ대학교를 가자. 그동안 쌓여있던 나의 욕구를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대학은 전국을 통틀어 이 곳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과 선택을 고민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카운슬러가 되고 싶기도 했고 유명한 정치인이 되어보고 싶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고시를 통해 고위 공무원이 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나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자 그 고민을 뒤로 미뤄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로가 가장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는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ㅇㅅ대학교 경영학과.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제법 멋있어 보이는 명칭이었다.       


        

 나는 진학상담을 하기 위해 학원생 신분으로서 마지막으로 재수학원을 찾아갔다. 늘 공부에 지쳐 힘들고 피곤한 모습으로 학원에 갔던 예전과 달리 오늘은 매우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지난 1년간 나를 가르쳐주신 고마운 선생님들이 그동안 고생했다며 축하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독한 놈. 결국 해내는구나."               



 독한 놈. 그 말이 나에게는 그렇게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뵈었을 때도 선생님께서는 나를 착한 게 아니라 독하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마음씨가 착한 학생은 주변 환경을 신경 써 나처럼 그렇게까지 하지 못한다고.     



 담임선생님 자리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니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먼저 고생했다며 격려해주셨다. 몇 개월 전 이곳에서 혼이 빠지게 혼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재회하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정시 지원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았냐는 질문에 미리 준비한 대로 말씀드렸다. 


              

 "그래, 그렇게 해."               



 ㅅㅇ대학교 지원을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일 것 같다는 우려와 달리 생각 외로 진학상담은 싱겁게 끝이 났다. 나중에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선생님께서 내 고집을 아시곤 절대로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 같아서 진학상담 전에 이미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마음먹으셨다고 한다. 독한 놈. 선생님의 말씀이 확실히 옳았나 보다.               



 진학상담을 마치고 정시 지원 시기가 오자 나는 지원 첫날 주저 없이 지원서를 모두 제출하고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대학생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몽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