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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un 06. 2021

자율근무제 9개월 차 중소기업

자율과 책임, 그 묘한 경계선의 실험


우리 회사의 직원은 현재 17명이고, 대부분 20대~30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벤트/프로모션/마케팅/이스포츠대회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이니만큼 야근과 주말근무가 일상인 회사였다. 2016년에 시작한 회사는 2019년까지 정말 미친 듯이 일을 했고, 감사하게도 엄청난 성장을 했다. 해마다 직원들에게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그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쪽 업계가 다 그렇지 뭐..


이쪽 업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기사의 내용은 대략 '제조업을 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에서 4시 퇴근 제도를 시행했는데, 업무의 효율성과 삶의 만족도가 동시에 올라가더라'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4시에 퇴근하면 삶의 만족도야 당연한 얘기이지만, 업무의 효율성이 올라가더라는 부분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나 '시간=돈'인 제조업에서라면 더욱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경우 <10시 출근 / 19시 퇴근>이 기본 원칙이지만, 야근을 안 하는 날보다 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야근을 안 하는 날에도 멍하니 퇴근 시간까지 시간을 때우다 19시가 돼서야 눈치 보면서 슬금슬금 퇴근하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럼 야근 안 하는 날, 즉 업무가 적은 날은 일찍 퇴근하여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바로 다음 날 팀장 이상 모여서 긴급회의를 했다. 부득이하게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 일이 많지 않은 날에는 17시에 퇴근하는 것을 제도화하면 어떨까라고 야심 차게 제안을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부장과 팀장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오히려 팀원들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어떤 마음인지 조금 이해가 되긴 했다. 17시를 제도화시켜놓으면 17시 이후에 일이 생겼을 때 업무를 요청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는 그런 의미였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직원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양해를 구해놓으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이 되어 우선 시범적으로 <10시 출근 / 18시 퇴근>으로 1시간 정도 줄여보고, 차차 더 줄여나가기로 합의를 했다. 


우려와는 달리 직원들도 일이 적은 날 빠르게 일을 마치고 18시에 퇴근을 했고, 야근이 있는 날은 흔쾌히 협조해 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17시 퇴근까지 조금씩 더 시간을 줄여나갔다. 물론 근로 계약서에는 <10시 출근/19시 퇴근>이라고 명확하게 적어 놓았지만...


코로나가 바꿔놓은 일상. 자율근무제


그렇게 적응해나갈 때쯤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주변에서 너도나도 긴급 휴업에 들어가거나,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코로나 초반에는 그래도 해오던 일이 있어서 쭉 정상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다가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업무의 양이 대폭 줄어들었다. 


6월까지는 최대한 방역 수칙을 지켜가면서 사무실 업무를 이어 나갔으나 재정적인 압박과 확진자 증가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7-9월 휴업을 진행한 후, 신규 프로젝트가 생겨 10월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가 아직 안정화되지도 않았고, ZOOM이나 각종 화상 회의 시스템을 이용하면 크게 불편함도 없어서 일단 우리도 자율근무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꼭 대면 업무가 필요하거나 외부 미팅을 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가급적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업무를 진행했다. 대신 재택근무 기간에 개인적인 외부 활동을 하거나 하는 부분은 철저히 통제를 했다. 업의 특성상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전체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렇게 2020년 10월부터 시작된 자율근무제를 9개월째 이어오고 있다. 각 팀별로 가끔씩 사무실에 나와 업무를 보거나, 외부 미팅 혹은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율근무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도 11시~12시 사이에 사무실에 나와서 업무를 보고, 15시~16시 정도면 모두 퇴근을 하고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업무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그 전보다 업무의 양은 훨씬 늘어났으나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져 야근을 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줄었다. 


삶의 질과 업무 효율성이 동시에 올라간다는 그 중소기업 대표님의 인터뷰가 절대 과장이 아니었음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만 보내는 것보다 빠르게 일처리를 하고 남은 시간에 자기 계발이나 리프레쉬에 투자할 수 있는 삶이 구현된 것이다. 직원들의 경우 왕복 교통비가 세이브되는 것도 작지만 쏠쏠한 덤이 아닐까 한다. (회사 입장에서도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이 적으니 전기세나 수도세, 중식대, 간식비 등 각종 운영비가 조금 절약되는 것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이다. 쉿!) 


출처 사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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