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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Aug 22. 2021

지옥에서 사옥까지 #012

창업 5년 만에 지옥에서 사옥까지, 스릴 넘치는 창업 드라마

#12-1. 2019년 9월~11월


2019년의 여름은 그 어느 해 보다 뜨거웠다. 물리적으로 기온이 높았다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열리는 첫 글로벌 대회를 준비하느라 진혁과 직원들의 열정이 한 여름의 강렬한 햇살만큼이나 뜨거웠다는 의미이다. 대회를 마치고 정말 짧은 휴가를 다녀와서, 또 전 직원들은 곧바로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글로벌 챔피언십 대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회를 준비하는 인원은 총 24명으로 작년 이맘때 대비 7명이나 또 증가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준호가 근무하는 방송사는 상해에 있었다. 진혁의 회사는 당연히 한국이었고, 대회의 총괄 담당자는 미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이었다. 또한 현지 에이전시도 미국 회사이기 때문에 한국-중국-미국 3자 컨퍼런스 콜이 매주 2~3회 진행되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직원들을 추가로 채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대형 행사를 비대면 회의로 진행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메인 언어는 영어인데, 한국 쪽 메인 PM들이 대부분 영어가 원활하지 않다 보니 부득이하게 영어에 능숙한 신입 직원들이 메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우리 쪽 메인 영어 커뮤니케이터가 영어로 브리핑을 하면, 미국 담당자가 영어로 대답 혹은 질문을 했다. 그렇게 영어로 질문과 답변을 하는 동안 나머지 영어 하는 직원들은 별도의 채팅방에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직역해서 올리는 다소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거치면서 행사를 준비해 나갔다. 처음 몇 주는 이런 과정이 상당히 버거웠으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어느 정도 불필요한 말들은 과감히 생략해서 통역하는 노하우들이 생겼다.


그렇게 비대면으로 대회를 준비하다가 9월 말경 드디어 첫 미국 답사를 가게 되었다. 대회 전 처음이자 마지막인 답사이다 보니 한 번에 많은 것들을 확인하고 결정해야만 했다. 마음은 급한데 확인할 것들은 많고, 심지어 시차 적응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촌극이 펼쳐졌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대회 총괄 담당자, 미국 에이전시 총괄 담당자, 호텔 및 각종 베뉴 담당자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을 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힘들고 답답한 준비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10월 말 1차 선발대가 미국으로 출발하며 본격적인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대회는 먼저 11월 초 2주일 동안 LA에서 예선전(group stage)이 펼쳐졌다. 거기에서 상위 성적을 거둔 16개 팀이 11월 말 샌프란시스코 Oracle Arena에서 결승전(final stage)을 가졌다. 총 3주에 걸친 대장정 끝에 최종 한국팀 Gen.G가 우승을 하며 우승 상금 200만 달러(약 24억)를 차지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대회 세팅 기간 포함하여 미국에서의 한 달 동안 진혁은 단 하루도 다리를 뻗고 잘 수가 없었다. 한국이라면 사실 거의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네트워크도 한국만큼 빠르지 않고, 근무 시간이나 인건비 규정이 까다로워 조금만 일정이 지체돼도 미국인들은 그냥 퇴근을 해 버리거나 엄청난 비용을 지급해야만 했다. 그마저도 근로자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거부할 수 있는 훌륭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뭐든지 빠르게 처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또한 현지 업체에 긴급하게 요청할 일이 있어도 한국의 은행 업무 시간에 맞춰서 외화 송금을 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도 하루가 지나야 확인이 되니 그 기다리는 하루 동안 진혁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뭐든지 적응이 빠른 한국인들은 여러 가지 비상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대책을 준비하여 결국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까지의 어떤 대회보다 일정도 길었고, 과정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땀과 눈물을 함께 흘리며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대회가 성공적으로 종료되면서 덕분에 진혁은 창업 이래 최대의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고, 묵묵히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12-2. 2019년 12월


진혁은 사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오랜 고민 끝에 회사의 사옥 매입을 결심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직원들로 현재의 사무실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회의실까지 점령한 사무 공간으로 인해 사무실 내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다. 사무실을 지금보다 큰 60평 이상의 넓은 곳으로 이전을 하던, 현재와 같은 사무실 2개 층을 임대를 하던 임대료의 증가는 불가피했다. 진혁은 월 600~700만원의 임대료를 낼 바엔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40억을 대출을 받아 5층짜리 꼬마빌딩을 매입하면 2개 층을 사용하고 남은 3개 층을 임대를 준다고 할 경우, 대출이자는 월 1000만원 정도인데 반해 임대 수익 최소 600만원이고 사무실로 이용할 2개 층의 임대료 최소 600만원이 절약되므로 최소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때마침 주거래은행의 부지점장은 매년 성장하는 진혁의 회사를 지켜보면서 이미 여러 차례 사옥 매입에 따른 최대한의 금융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상황이었다. 은행의 말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고 해도 진혁은 원래 셈에 빠른 편이기에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도 사옥을 매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고 판단했고, 생각이 정리되자 발 빠르게 행동에 돌입했다. 그야말로 지옥 문턱까지 갔던 진혁에게 사옥이라는 커다란 선물이 찾아온 것이다. 물론 최종 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 모든 직원들에게는 비밀로 할 예정이었다. 어설프게 공개되면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센티브와 여러 가지 계획들이 정해지면 한 번에 공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사옥 매입을 결정하고 수십 개의 건물들을 돌아봤지만 이런저런 조건들이 잘 맞지 않았다. 진혁은 사옥 매입의 절대 조건이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데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어느 건물을 보아도 몇 가지의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있었다. 신축인데 엘리베이터가 가운데 있어서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건물, 대지가 작아 건물의 크기가 매우 협소한 건물, 리모델링을 하려면 기존 입주자들의 명도 절차가 필요한 건물, 리모델링하는 비용보다 신축이 나을 정도로 낡은 건물 등 좀처럼 마음에 드는 건물을 만나기가 어려웠지만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30개 정도의 건물을 봤을 때, 한 낡은 건물을 만났다. 9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대지 71평에 건평 35평.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네모 반듯한 건물이다. 지금의 건축법상으로는 용적률이 초과되어 이렇게 짓지 못한다. 진혁은 우선 장점도 장점이지만 단점이나 결격 사유를 빠르게 체크했다. 리모델링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단점이 있는지 훑어보았으나 현재 가진 결점들은 공사를 통해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진혁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리모델링이나 대수선 공사를 하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익히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가급적 새 건물을 매입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드는 새 건물은 찾을 수가 없었고, 마침 낡은 건물을 보는 순간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난을 줄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더라도 이 낡은 건물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결국 진혁은 짧은 고민과 함께 바로 계약을 진행하였다.


물론 이때까지 진혁은 2020년 자신에게 어떤 시련이 닥칠지는 단 1도 예상하지 못한 채, 순진하게 사옥을 매입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약 25년 된 낡고 낡은 못난이 건물


  >> 다음 화에 계속...


#창업 #창업스토리 #창업분투기 #스타트업 #투자 #직장생활 #회사생활 #사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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