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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당근 후기

오늘도 평화로운 당근 나라 2건

by 아이엠 저리킴

지난 일요일 아주 오랜만에 당근을 이용하다 겪은 스펙터클한 일화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2건의 당근이 모두 평탄하지 않았는데 각각 소개하는 것보다는 시간 순서에 맞춰서 두 개의 당근이 어떻게 꼬였는지를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 당근 1 : 아이폰 16 구입 (256기가)

◼︎ 당근 2 : 책상 상판 강화 유리 나눔 (145cm X 65cm X 0.4cm)


* 15:00 PM

먼저 강화 유리 나눔을 당근에 올리고 나서, 당근을 둘러보는데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아이폰 16이 우리 집 바로 근처에서 올라와 있는 매물이 보였다. 살펴보니 내가 원했던 가격과 스펙이라 망설임 없이 구매를 결정하고 5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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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0 PM

아이폰 당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데, 강화유리를 가져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질문 끝에 가져가신다고 해서 뽁뽁이를 한 바퀴 둘러서 집 앞에 내놓고, 아이폰 당근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이폰은 설명대로 약간 파손된 필름이 붙어있었으나 액정은 문제없다는 말을 듣고, 필름을 뜯어보지 않고 쿨거래 후 다시 집으로 왔다.


* 18:30 PM

집에 도착하자마자 액정 필름을 교체하기 위해 기존 깨진 필름을 뜯어 냈는데, 필름 안에는 어마어마한 스크래치가 있었다. 아마도 판매자도 속였다기보다는 필름을 붙인 기간이 길어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환불 요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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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둘째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서 집 앞에 내놓은 강화유리를 1층까지 옮겨드리고 왔다는 것이다. 아들 말에 의하면 60세가 넘은 왜소한 할머니가 혼자서 가지러 왔다고 하는 것이다. 1층까지 옮겨 드린 들 그걸 어떻게 들고 갈까 걱정이 됐지만 아이폰 환불이 더 큰 문제였기 때문에 일단 신경을 끄고 있었다. 알아서 잘 가지고 가셨겠지...


* 19:20 PM

그렇게 빨리 메시지를 확인하던 아이폰 판매자는 거래 후에는 도무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하.. 설마 그냥 당한 것인가. 바로 옆 아파트 사람이라 나름 믿고 거래했는데...' 오만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는데 드디어 7시 20분이 되어서야 메시지를 확인하고 환불해 주겠다는 답이 왔고 9시에 만나기로 했다.


스크래치를 확인하고 바로 좀 화가 나서 세게 얘기할까 했다가 고의가 아닐 수도 있기에 조심스레 얘기했는데 다행히 고의적으로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강화유리 할머니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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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0 PM

아이폰 환불을 위해 만난 장소로 다시 나갔고,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았다. 또 '아.. 나를 안심시킨 후에 번호를 바꾼 걸까? 계속 기다려야 하나?' 하면서 계속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강화 유리를 나눔 하신 할머니(?)의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내용은 대충 생각보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1층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해도 택시가 짐을 실어주지 않아서 일단 1층 벤치에 두고 왔고, 내일이라도 와서 가져갈 건데 혹시 다른 사람한테 나눔 하셔도 된다. 지금 마땅히 싣고 올 만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아이폰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알겠다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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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40 PM

아이폰 판매자는 40분이 지나서야 드디어 회신을 했다. 아이 재우느라 늦었다는 변명(?)이라도 듣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늦은 건 하나도 화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약속 장소로 나왔고 약간의 설명과 함께 제품을 환불해 주고 무사히 비용을 송금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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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당근 1(아이폰)과의 거래가 무사히 환불 엔딩으로 끝나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당근 2(강화 유리) 할머니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집에 도와주실 분 있으시냐, 계신 곳 1층까지 차로 가져다줄 테니 집에 가지고 올라가는 건 직접 하셔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너무 기뻐하면서 가져다주면 경비 아저씨께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고 나는 강화유리를 즉시 실어서 할머니의 아파트로 이동했다. 차로는 10분도 안 걸리는 곳이지만 이걸 구루마로 끌고 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옵션이었다. 언덕도 심했고, 걸어서는 더더군다나 갈 수가 없는 거리였다. 장모님 생각이 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알려주신 주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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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0 PM

할머니가 알려주신 아파트에 도착을 하니 할머니가 한참 전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차를 잠깐 세우고 트렁크에서 강화 유리를 꺼내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까지 옮겨드렸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차를 후진해서 조심조심 나오고 있는데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이신지 내 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사진처럼 계속 나를 지켜보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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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쳐다보시는 마지막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잠시 집까지 가져다 드릴까 후회했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또 오버인 거 같아서 생각을 이내 접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2건의 당근을 무사히(?) 완료하게 된 것에 감사했다. 한 건은 무사히 반품 엔딩, 한 건은 나눔 훈훈 엔딩


요즘 당근에 대한 수많은 스펙터클 서스펜스 스토리에 비하면 이 이야기는 다소 심심한 감이 있을 것이다. 범죄 엔딩도 아니고 그냥 나름 소소 엔딩이니까. 그런 흉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잘 마무리된 건 그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다녀서 일거라고 괜한 근거 있는 자부심(?)을 느끼는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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