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은 뜨개방이나 다름없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불을 덮고 앉아서 뜨개질을 만들었던 적이 많았다.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창문에 걸려있는 커튼은 뜨개 커튼이고, 발 매트, 선반 매트, 방문 손잡이 커버, 의자 커버 만들 수 있는 모든 소품이 뜨개로 만들어졌다.
엄마는 뜨개질을 밤낮없이 하시면서도 늘 두 딸에게는 “너희는 절대로 뜨개질 하지 마라, 시작도 하지 마.” 신신당부했다. 유치원이던 시절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귀에 박히게 듣던 이 말은 뜨개질과 나를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게 만드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몇 번 정도 시작의 고비는 있었다. 여름철 얼음 담긴 컵에 서리가 책상 위에 흥건할 때면 뜨개 컵 받침 하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던가, 귀엽고 아기자기한 손 수세미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한번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다 엄마의 주문이 문득 떠오르면 고개를 저어 뜨개질의 ‘ㄸ’자도 생각하지 말자 다짐했다.
그러던 내가 요즘 뜨개 수업을 기웃기웃하고 있다. 뭘 만드는 건 체질에 안 맞기도 하고 똥손인데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엄마가 뜨개질을 시작했던 나이도 이쯤이 아니었을까?
기웃거리던 뜨개방에 등록했다. 뜨개질은 영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재미있다. 아직 손도 느리고 손에 힘도 잔뜩 들어가 있지만, 뜨여져 나가는 실들을 보니 뿌듯하다.
어제는 큰애, 작은애, 나 나란히 앉아 거실에서 뜨개질했다. 뜨개에 집중하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 집이 어릴 적 그때의 사랑방이 된 것 같았다.
친정 제사가 있어 뜨개질을 가지고 방문했다. 엄마에게 조언도 얻고 다른 티 받침 모양도 뜨개로 배울 겸 바리바리 싸 들고 갔다. 제를 지내는 틈틈이 뜨개질했는데, 엄마는 내 뜨개를 보고 빵 터져버렸다.
마름모꼴 모양 뜨개 티 받침, 미역 모양 쭈글쭈글 티 받침. 내가 만든 티 받침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손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며 힘의 균형을 맞추라고 했지만, 구멍이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기 싫어 촘촘히 뜬다는 게 한 코한 코 온 힘을 다해 뜨는 나에게는 힘을 뺀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도 조금의 여유가 필요하듯이, 뜨개를 하는데도 여유가 필요한 게 아닐까? 잘하려고 하면 더 망쳐버리기 일쑤였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망한 뜨개 6개가 지나가고 나니 손에 힘을 빼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