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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이 Oct 30. 2021

[작가의책방] 1일 서점지기 그날의 분위기


           



1:25     


첫 번째 손님이 오셨다. 언제 어떻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소개팅을 나가 상대방과 처음 대면할 때의 그 설렘처럼 너무 떨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말을 거는 타이밍이다. 순간을 놓치면 어중간하게 어색함이 감돌 것이고, 조금만 엇나가도 혼자 방문하신 손님이라 머쓱해 하며 나가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그래도 이 어색한 공기에 노래가 있어서 다행이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 

책방 문 옆에 독립출판 책들을 오래 들여다보셨다. 조금씩 책방을 둘러보는데 여유가 느껴졌다. 타자기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셨다. 지금이 기회다. 

‘타자기 사용해 보신 적 있으세요?’

멋쩍은 눈웃음을 동반하며 최대한 상냥하고 친절한 서점원 포스를 폴폴 풍겼다. 애 때>?보이는 그녀는 서점을 들어서자마자 타자기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시선을 압도하는 타자기에 조금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2벌식 타자기는 컴퓨터 자판과 흡사해서 단 1분 강의로도 거의 모든 단어를 rnk할 수가 있다. 처음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희미하게 찍힌 먹지도 색이 선명해졌다. 

‘은근 집중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내가 타자기를 들고 온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최고의 칭찬을 해주었다. 앳돼 보이는 그녀의 인상만큼 폴폴 풍기는 그녀는 처음 제주도에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여동생은 없지만 혼자 여행을 보낸 여동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소소한 근황 이야기를 하고 이제는 그녀의 다른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공감대가 생기고 추억이 생기는 신기한 일들, 첫 설렘이 주는 힘이 이런가? 헤어짐이 아쉬워 그녀와 두 번의 포옹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 방법이다.      




2:25     

두 번째 손님이 오셨다. 다정해 보이는 커플 손님이다. 두 분이라 그런지 적극적으로 책을 둘러보신다. 여성분이 앉아서 책을 펼쳐 보신다. 어떤 책일지 궁금해 하는 것도 잠시, 저 책이 어디쯤 꽂혀 있던 책인지 되뇄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나는 영락없는 주인장 분위기였다. 일어나 선반에 놓여있는 책을 둘러보기 시작하셨다. 그때 내가 요즘 빠져있는 ‘paris in the rain’이 흘러나왔다. 책을 한참 보던 그녀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손가락을 다리에 튕기며 살짝씩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내가 고심하며 고르고 고른 플레이리스트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바로 이런 순간이 내 책을 구매하며 나가는 손님의 뒷모습보다 더 짜릿한 순간인 것 같다.      




2:54     

키 차이가 확연히 나는데도 오묘하게 분위기가 닮아있는 여성 두 분이 오셨다. 이 근처 3인칭 관찰자 시점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들르셨다고 한다. 그녀들은 각자의 시선과 시간을 보내며 책을 둘러봤다. 내 첫 물음은 ‘여행 오셨어요?’이다. 여행 중이라고 하셨다. 친구랑 여행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둘은 십년지기가 훨씬 넘은 어릴 적부터 친구라고 한다. 책보다 타자기에 관심을 더 두시는 듯했다. 간단한 설명을 하고 그녀가 타자기를 먼저 두드렸다. ‘오오’라는 탄성이 연이어 나왔다. 이제까지 오신 분 중에 가장 소리도 크고 먹지도 잘 묻어났다. 파워풀한 손놀림이 서점 안을 타닥타닥 울려 퍼졌다. 그녀는 내 책 뒤에 적혀있는 용기와 관련된 짧은 문구를 적어가셨다. 책을 파는 데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 공간에 들려주시는 분들이 뭔가 작은 선물을 받고 가시는 기분이셨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사람, 바람, 시간, 순간, 공간, 음악 그리고 햇살까지 너무 좋다.      




3:28     

여성 두 분이 오셨다. 책을 읽는데 남녀 구분을 짓고 싶지는 않지만, 방문자에는 확연히 눈에 띄는 성비가 있는 것 같다. 간간이 들리는 말투에서 사투리가 섞여 나온다. 이분들은 무조건 여행 오신 분일 것이다. 어김없는 나의 첫멘트를 던졌다. 역시나 하고 물은 대답에 그녀들은 제주살이 중이라고 하셨다. 무명 서점에 방문해서 ‘엄지사진관’ 책을 구매하시고 관련 다른 책들을 찾아보러 이곳에 찾아오셨다고 하시며 한쪽에 마련된 독립출판물을 한참 둘러보셨다. 누군가 나의 책을 찾아주고, 찾아다니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내심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분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주메뉴 마냥 내 책이 잔뜩 전시되어있는 zone에 발길을 머무셨다. 책을 꺼내 사라락 펼쳐 보셨다. 기타를 배우고 공연하며 혼자 버스킹을 다니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짧게 엮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작가님이시네요’라고 하시는데 내 볼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부끄러운 호칭이다. 더 분발해야지! 찾으셨던 엄지작가님의 책 뒤편에 적혀있는 글귀를 타자기로 치고 가셨다. 그녀들은 합이 참 잘 맞는 찐 단짝 느낌이 폴폴 났는데, 옆에서 타자기를 칠 때마다 ‘받침!’ ‘띄어쓰기!’를 함께 외치며 오타 하나 없는 종이를 들고 가실 수 있었다. 세상 다정한 좋은 친구분을 두셨다. 




4시가 넘어가니 동네가 한적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책방에 놀러 온 기분으로 몇 권의 책을 골랐다. 캬악, 역시 책을 고르는 맛이 있지, 책방에서의 하루를 생각하며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책을 읽는 상상을 했다. 이제 이루어지는구나. 책과 노래.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을 한참 읽어 내려갔다.      

책방 앞을 지나가는 손님이 없다….     




5시 40분     

해가 지기 시작하자 공기가 차가워졌다. 따뜻한 커피 생각이 절로 났다. 퇴근하면서 손님들과 이야기했던 3인칭 관찰자 시점 카페를 들러 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 혼자만 있는 공간에서 책을 읽으니 집중이 더 잘되고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너무 아쉬운 시간들이 지나간다. 하루만 오기에는 너무 아쉬운 시간들인 것 같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벤트처럼 느껴졌다. 책방이 오늘 나에게 근사한 선물을 준 것 같다. 덕분에 잊지 못한 행복한 추억이 잔뜩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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