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팔리는 책이란 이런거구나 하고 배웁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평입니다.
평가를 하자면 재미만 있었다. 300페이지가량 되는 책의 세계관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60페이지까지 지속되었을 뿐, 그 이후론 힘이 떨어졌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물이 나오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냥 풍선껌 같았다. 단물은 의외로 빨리 빠졌고 풍선을 불기도 전에 버릴뻔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상하게도 나에게 맞는 책이 아니자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책이 정말 별로였는데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꼭 좋은 책이여만 할까?라는 합리화를 시작했다.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책을 읽은 시간에 대한 보상 때문이다. '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어'라는 생각.
어쨌든 그래, 내가 동심이 없어서 이해를 못한 걸까? 그런 걸까?
바보 같은 질문을 스스로한테 던진다.
꼭 좋은 책이어야만 할까? 이 정도면 좋지! 쉽게 읽혔으면 됐지!
그러다 이 질문은 더 회의적으로 변했다.
꼭 의미를 찾아야 할까? 꼭 교훈을 남겼어야 해? 새로웠으면 됐지!
전형적인 만족하기 전략이다. 나는 생각했다. 아니 별로인 책은 별로다. 난 이 책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떡밥도 풀린 것이 없고 세계관에 대한 설명도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다. 반면교사를 하던 비판을 하던 그래야지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은 것을 보상받을 것 같다. 만족하기가 아니라 만족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겠다.
불만만 토로하는 건 어린애고 비난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으면 하는지를 나름의 논리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비판이고 비평이다.
1. 달러구트는 사람들의 인생사를 다 꿰뚫고 있었다. 어떻게?? 왜??
달러구트는 어떤 사람이길래 손님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다 아는 걸까? 뭐지?에 대한 맥락도 떡밥에 대한 회수도 없었다. 예를들어 책내용에는 작가 자신을 투영했는지 창작자, 작가들이 자주등장하는데 챕터8에 타인의 삶부분에 한 가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수는 꿈백화점을 어슬렁거리다 마땅히 책을 찾지못하고 돌아서던 참이었다. 그 순간 그 사람에게 다가가 달러구트가 말한다
"손님 어느정도의 꿈 길이를 원하시나요?"
"15분정도요"
"15분이라 적당하군요. 뭔가 색다른 꿈을 원하시는 거죠?"
"어떻게 아셨어요? 전 일상이 따분하고 재미가 없어요."
이후 달러구트는 이 사람에게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수의 삶을 추천하고 남자는 흔쾌히 수락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잠들었는데! 이거 참 놀라운 우연이군요!"
"글쎄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죠" 달러구트가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했다.
이것 외에도 많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한 남녀의 사랑을 꿈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던지. 꿈을 1:1로 팔때는 그 사람의 인생사, 고민들을 모두 꿰뚫는 말로 이야기한다. 달러구트는 어떤 존재이길래 현실세계의 일을 다 안다는 것일까? 사람들의 사연과 고민을 다 아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떡밥? 답? 맥락? 없다. 있다고하면 신의 세명의 제자 꿈을 담당하는 자손이라는것. 그렇다고해서 달러구트는 신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생각없이 그냥 뿌려댄 이야기가 너무 많다. 질문을 할수록 더 괴로워지는 책이다.
2. 세계관이 강점이었는데 확장되지 않았다.
너무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꿈이라는 좋은 소재를 잘 살렸지만 나는 아쉬웠다. 너무 단순했다. 단순하면서 심오하면 좋으련만 세계관이 확장되지 않고 끝났다. 루시드 드리머에 대한 관계, 꿈 제작자는 어떻게 꿈을 만드는지, 설렘 한 병을 훔쳐갔던 그 사람의 배후, 평행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좀 더 구체적인 세계관을 구축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뭔가 확장되다가 말아서 흥미가 돋워졌다가 다시 말려들어간 느낌이었다.
내가 작가였다면 등장인물을 대폭 줄이고 꿈 제작자도 한 명만 썼을 것 같다. 그 사람의 상징성이 분명하게 했을 것이며 꿈을 어떻게 만드는 지도 보여줬을 거 같다. 그리고 마냥 희망만 보여주진 않았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세계관이 백화점에서만 이루어져서 아쉬웠다.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 1시간만 보다 끝난 느낌이었다. 불의 잔, 죽음의 성물과 같은 클라이맥스는 없었다. 이게 요즘 스타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3. 깊은 이야기가 없었다.
반전이 있거나 깊이가 있거나 둘 중 하나가 되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깊이란 콘셉트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컨셉은 컨셉이고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만약 꿈에 대해서 썼다면 칼 융이나 프로이트의 이론을 담아낸 백화점을 만들었다면 더 풍성했을 것이다. 백화점 5층을 인간의 의식구조를 나타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꿈 백화점은 콘셉트이고 진짜 이야기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통해 발달과정이나 성장을 이야기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렇게 만들었다면 책을 적어도 두 번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무의식을 표방하지 않았다. 그냥 이곳은 평행세계였다. 그래서 단순해서 좋았다고 할 순 있지만 아쉽다. 아니 과감하게 말해서 별로였다.
깊이가 없었다 라고 생각한 이유는 커뮤니케이션 콘셉트만 있었지 실속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케팅에도 재미있는 콘셉트를 가지고 광고를 하지만 실속 없는 것들이 많다. 이런 류들은 대부분 이벤트성, 오락성이 크다. 지속성이 없는 만큼 강력하긴 하다.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선 먼저 실속이 있고 비주얼 콘셉트를 씌우는 것이다. 비주얼 콘셉트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방법이지 실속이 될 수 없다. 시각디자인이면 몰라도 활자는 더욱 그렇다.
가령 싯다르타는 성장소설이지만 불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데미안은 성장소설이지만 칼 융의 심리학, 기독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종교 소설이라 해서 또는 종교에 비판적이라 해서 종교적인 부분만 있지 않다.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종교의 의미로만 받아들인다면 정말 잘못 읽은 것이다. 표면적인 이야기를 벗겨내면 다양한 의미에서 해석이 가능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종교적인 의미를 담았지만 그것에 더 깊게들어가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
하지만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한 가지 의미만 가졌다.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다시 읽어볼 필요 없는 책 같았다.
4. 평이하다.
극 초반부. 몰디브에 3박 4일 휴가를 보내는 꿈은 들어오지 마자 다 팔렸어요!라는 부분을 읽고 의구심이 들었다. 현실을 딛게 만드는 꿈이 좋은 꿈 이랬는데 몰디브에서 3박 4일을 보내는 '비현실적' 꿈이 가장 잘 팔리며 동시에 그런 부류의 꿈들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달러구트는 아무래도 현실을 딛게 만드는 꿈을 팔 거란 것과 모순되기에 분명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라 충분히 예상했고 이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너무 예상 가능했다. 40페이지만 읽었는데 너무 로드맵이 보였다. 한마디로 뻔했다.
그 외, 영국 배경에 한국사람들
갑작스레 등장하는 페니의 썸
차라리 5부작으로 만들지..
컨셉은 참신했다.
컨셉만 참신했다.
작가도 이런 고민을 안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심오해지고 어려워지면 재미가 반감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우주의 얕은 지식 피키캐스트처럼의 카피 선정의 비하인드처럼, 쉽사빠를 내세우는 지금, 사람들은 얕고 가벼운 것을 원한다. 난 깊은걸 원해요! 해도 실상 그들이 소비하는 행동은 가벼우며 스낵무비와 인터넷 방송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요즘 트렌드는 평범한 이야기에 특별한 컨셉이다. 마치 유튜버 긴벌레(평범한 이야기에 특별한 콘셉트가 궁금하면 처 보시길)처럼, 마케팅! 이걸 정말 잘하신 것 같고 그걸 또 잘 살렸다. 내용은 딱히.
요즘 트렌드를 잘 반영했다. 한마디로 친근하긴 한데 특이한 친구 같은 스토리가 살아남는다. 옆집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처럼 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콘셉트, 너무 동떨어지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작가는 이를 통찰했고 소설에 그대로 반영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어쨌든 비판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잘 팔렸으니 장땡이다. 싱겁지만 그렇다. 그것만으로 가치를 증명했고 대단한 소설이며 박수받을 만하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그냥 나랑 맞지 않았을 뿐이고 소설을 읽는 목적이 나랑 달랐을 뿐인 것 같다. 나의 목적은 배움이었지 재미만을 위한 소비는 아니었다.
책을 고르는 기준
싯다르타를 읽고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어서 그런지 더 불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것 같다.
나에게 맞는 책이 있고 맞지 않는 책이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나랑 맞지 않는 책이다. 60p까지는 나랑 잘 맞았다. 새로웠고 영감을 주기 충분했다. 근데 그 이상이 없었다. 60p만 읽고 덮어도 기분 좋았을 책이었다. 혹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면 그냥 유튜브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대중적인 자기 계발서가 낫다. 약간 실망했다. 앞으로 고전 소설이 아닌 이상 굳이 찾아보지 않을 것 같다. 거를 수 있는 눈의 기준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는 책은 이제 거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불면증이 나아졌다는 사람도 있고
이 책을 읽고, 자는 게 싫었지만 자는 게 기대되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 책을 읽고, 앞으로 꿈이 기대되고 기록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나는 아니지만 분명 가치 있고 뜻깊은 소설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소설임에도 의심이 없다. 나는 꿈 백화점을 샀지만 후불제로 꿈 값을 지불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설렘의 꿈 값과 자신감의 꿈 값을 지불한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감정이 풍부할수록 꿈 값을 더 잘 지불된다. 그런 해석을 빌리자면, 감정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잘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꿈 값을 제대로 지불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꿈 컨설턴트 달러구트가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