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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ug 28. 2022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최악의 나를 마주하는 순간

 사랑 영화를 미친 듯이 몰아서 보던 때가 있었다. 아니, 이별 영화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이별에 휘청거리고 있을 때 나는 영화의 힘을 빌어 울고 다시 일어났다. 이별을 경험하기 전에 봤던 영화도 이별한 후에 보니 느끼는 감정이 무척이나 달랐다. 그제야 영화도 이별의 경험치가 쌓여야 제대로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예를 들어 영화 중경삼림이 그랬고 이터널 선샤인이 그랬다. 처음 중경삼림을 봤을 때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왜 여자가 주거 침입하는데 사랑에 빠지는 거야, 이렇게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던 내가 이별 후에는 누군가가 내 사랑과 이별의 흔적을 깨끗하게 치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터널 선샤인은 생각보다 너무 지루해서 보다가 잤던 영화인데 이별 후에 보니 너무 아파서 엉엉 울면서 봤다. 그리고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예전처럼 아프지 않게 된 어느 날, 이 영화를 봤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목부터 나를 이끄는 영화들이 있다. 어떤 영화인지 내용도 모르지만 제목만으로도 보고 싶어 지게 만드는 영화, 이 영화가 그랬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제목만으로 영화를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반드시 봐야 할 것만 같았다.




 영화 제목부터 물씬 풍기는 사랑 그리고 최악이라는 단어가 나를 사로잡았다. 아직 나에게는 사랑이 어렵다. 한 번의 긴 사랑과 이별이 지나가고 나니 사랑을 하기 전에 나라는 사람을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러다 몸에서 사리가 나오지나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내가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생각하면서 일상을 살고 있다. 때로 사무치는 외로움이 나를 덮치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내가 사랑을 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이 영화가 찾아왔다. 사랑할 때 나의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 보여줬던 최악의 나를 떠올리게 했던 영화 제목,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제목처럼 사랑할 때 최악이 되는 순간, 주인공 율리에의 사랑과 성장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보며 서투르고 이기적인 확실히 성숙하지 못한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사실 알고 있다. 나는 철저히 내 감정만을 우선하기도 했고 소름 끼치게 나를 학대하던 순간도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이라는 건 어쩌면 성숙하지 못한 내 단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도구가 아닐까. 예전보다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겁이 나서 나는 아직도 사랑이 어렵기만 하다.




 영화를 보면서 완전한 사랑이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완전하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되겠지만 완전함을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완전을 내포한다는 게 아닐까. 갈등 없는 삶이 없는 것처럼 갈등 없는 사랑도 없다. 두 사람 중에 한 명만 평생 배려하며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은 평생 이어지는 갈등 해결 과정인 것이다.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온전한, 완전한'이라는 말, 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치기 어리게 '영원함'을 믿었던 어린 날의 내가 잘 이별하지 못함의 아쉬움을 아직 마음 한 편에 남겨두고 있는 것 또한 불완전함의 부산물이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사랑할 때 최악이 되기도 한다. 이별을 감당하지 못하던 나는 그 최악의 순간이 모두 나의 잘못이라 탓하며 한참 동안 나를 갉아먹었다. 일어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됐다.



 

 우리는 완전해지기 위해 사랑을 하는 걸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최악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온전히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누군가를 온전히  온전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우리를 사랑하게 만든다.




 사랑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에서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물론 그 사랑은 충분한 시간과 배려,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힘든 시간을 지나더라도 서로에게 일상이 되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기적인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나 헌신적인 사람이었나 놀라기도 하면서 사랑을 통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성장한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 최악이 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모두 내가 지나온 시간이다. 어쩌면 사랑은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서툰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경험을 하는 것, 사랑하는 당시에 깨닫고 변화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늦게 깨달아 후회하고 아프기도 한 그 모든 시간이 사랑이다.




 결국은 나의 생각도 너의 생각도 그저 흩어질 뿐이지만 싸우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가 하면, 이 지겨운 반복을 끝내고 싶을 때 끝내 이별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이 온전한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이별은 일방통행만으로 충분하니까 받아들여야 한다. 정답은 없다. 그저 그 과정에서 사랑하고 배우고 조금 더 성장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우리가 사랑하고 이별하는 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생판 모르는 남이던 두 사람이 사랑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삶을 가득 채우는 순간, 세상에서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모든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찰나라서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더 노력하고 공들여야 한다.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듯 사랑도 당연하지 않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의 모순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보다 내 경험이나 생각을 많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가 본 영화가 꽤 좋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영화 후반부에 조금 졸기는 했지만 이건 영화가 좋았다는 걸 이야기하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 더 지나고 나서 이 영화를 본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영화가 나에게 와닿았던 건 바로 여주인공의 충동성과 과감함 때문이었다. 영화의 모든 것이 공감 가는 것도 아니었고 완벽한 영화도 아니었지만(거기다가 왜 청불 영화가 아닌지 의문스러운 유교인) 방황했던 그리고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최악이었던 나를 생각나게 해 주어서 좋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격렬한 최악을 담고 있지는 않은데 그래서 더 공감이 갔다. 그 시절 쓰레기 같던 나의 만행들(?)이 생각나 다시 반성을 했다는 후문..



 영화적 장치로 이해가 가지 않는 점들도 있었으나 그마저도 영화 전체적으로는 잘 표현됐으니 나도 억누르고 있던 것들을 마른 버섯의 힘을 빌어 표출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영화를 보며 율리에의 모습에서 충동적이던 날의 내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꽤나 열정적이었다. 나는 아직도 헤매고 있지만 영화 말미에 나오는 율리에의 모습처럼 담담하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참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불완전한 서로가 채워지는 경험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다툼과 화해, 배려, 수많은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있다. 그럼에도 그 파도와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한 단계 더 성장한다.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고 최악의 나를 만나기도 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최악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에 풍덩 뛰어들어 그 사랑을 만끽할 때에도 나는 내 삶이 불안했다. 철없이 영원을 말하던 날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으니 어쩌면 이 불안은 평생 나와 함께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누구나 최악을 경험하고 성장한다. 그 경험을 통해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면 이제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시간이다.




 영화 한줄평.

 최악이 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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