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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 마치 Jan 15. 2019

20. 멜라니아 트럼프와 가나의 여인들

2018년 9월 28일 ~ 10월 4일

Reuters / 미국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의 아프리카 순방 첫날인 화요일,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가나 여성들이 그녀의 자동차 행렬을 보고 있다.



-아프리카 마치의 단상-



10월 1일부터 7일까지, 미국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가 아프리카 4개국 가나, 말라위, 케냐, 이집트를 순방했다. 그의 첫 공식 단독 순방이다. “미국개발청(USAID)와 협력해 자국의 가장 큰 문제들을 해결해 온” 것이 방문국가의 선정기준이라고 한다. 왜 트럼프는 아프리카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니, 아프리카는 대체로 영부인만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 다시 말해 미국이 아프리카를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트럼프 직전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딸과 함께 2011년에 아프리카의 남아공과 보츠와나, 2016년에 모로코와 라이베리아를 다녀왔고, 힐러리 클린턴은 영부인 시절에 세네갈, 남아공, 짐바브웨 등  8개국을 대통령 없이 혼자 다녀왔다고 한다. 


멜라니아 트럼프의 이번 아프리카 방문은 자신이 주도하는 교육, 복지 캠페인 ‘Be Best’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는 가나에서 어린이병원을 찾았고, 말라위에서는  140만 권의 책을 기부했으며, 케냐에서는 나이로비 공원에 갔다. 이렇듯 미국 영부인의 아프리카 방문은 대체로 교육과 복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에 가장 공을 들인 이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로라 부시를 들 수 있다.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쳐 임기를 수행할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아프리카를 방문해서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론칭하였으며, 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임기 중 중요한 업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영부인의 아프리카 활동이 남편인 대통령의 업적으로 치환된 것이다.


멜라니아 트럼프의 아프리카 단독 순방에는 구설(口舌)로 위기에 몰렸던 남편을 구하기 위한  노림수도 어느 정도 깔려있다.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개혁안을 논의하던 중 중미와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겨냥해 “‘거지소굴(shit hole)에서 온 사람들을 우리가 왜 받아들여야 하냐”라고 말해서 이들 국가들의 원성을 산 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멜라니아가 아프리카를 방문해 미국에 대한 악감정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아프리카 순방을 진행하던 멜라니아 트럼프 역시 케냐의 나이로비 공원에서 19세기 식민지배 지휘관들이 착용한 억압의 상징물 ‘피스 헬멧(Pith Helmet)’을 착용해 또 다른 구설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입은 옷이 아니라 행동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영부인의 옷차림이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와 영향력을 갖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멜라니 트럼프의 방문 차량 행렬을 바라보는 가나 여인들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정치적인 것, 시사적인 것을 떠나 여자라면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떠올랐다. 사실 아프리카 대륙은 지구 상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임에 틀림없다. 그런 지역에서 스스로 벌어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저 여인들은 세계 강대국 미국에서, 그것도 최강 권력을 지닌 대통령의 부인이 온 것을 보며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삶의 모습에서 워낙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위치에 대한 회한 같은 것까지 느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 부인으로서 멜라니 트럼프의 인생이 꼭 훌륭하거나 성공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신기한 듯, 무심한 듯 바라보는 저 여인들의 인생이 힘은 들어도 더 주도적이고 생기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장 판에서, 도로 위에서 음료수를 팔며 고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저 여인들이, 자신의 생각과 무관하게 행동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지닌 멜라니아 트럼프보다 더 제대로 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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