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프리카 마치 Jan 15. 2019

25.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

2018년 11월 2일 ~ 8일

Getty Images / 토요일,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패션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이 작업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마치의 단상-


아프리카 여자아이들에게도 꿈이 있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 앞에서 꿈도 희망도 신기루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비프렌더스 인터내셔널 2018년 10월 호에서)



위의  사진을 보는 순간, 바로 이 구절이 생각났다. 무덤덤한 글인데 가슴이 조여들었다. 허전한 그들의 마음 앞에, 그렇게 공부하고도  또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는 나는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 배가 터지도록 먹는 사람이었다. 물론 아프리카 여자아이들이라고 다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힘든 형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말자.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하지만 다수와 소수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 아프리카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여성은 소수이고 교육의  근처에 가기도  힘든 여성이 다수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현실을 놓고 볼 때,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위 사진의 여자아이는 어쩌면 선택받은  소수의, 운이 좋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엘런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전직 대통령이나 최근 선출된 사흘레 워크-쥬드 에티오피아 대통령처럼 아프리카도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고  많은 여성 고급 공무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아프리카 여성의 현실은 비참하다고 말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지독한 가난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집안 생계를 위해 어린 나이에 거리의  여자가 되거나 결혼이라는 명목 아래 돈을 받고 팔려가는 것은 비참하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못하다. 아프리카에 아직도 만연한 여성  성기 절제(FGM)나 내전이 일어나는 곳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강간과 이어지는 살인, 그리고 시신에 대한 방화는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두렵고 끔찍하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의 사진을 앞에 두고 나는 왜 이렇게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미래에 저 아이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만큼 저 아이가 걸어가야 할 수많은 장애물들이 미리 걱정되기 때문이겠지. 또는 저 아이 뒤로 있는 수많은  아프리카 여자아이들, 꿈을 가졌지만 이룰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아이들, 심하게는 꿈꾸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비참한  현실에 놓인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일 테다. 



Getty Images / 한때 소말리아 난민이었던 일한 오마르(Ilhan Omar)가 미국 하원의원에 선출된 뒤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내 눈에는,  놀랍게도, 소말리아 난민 출신의 여성이 미국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어 기뻐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2016년에도 선출되었으니 이번에는 그 자리를 지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일한 오마르, 구글에서 알파벳으로 Ilhan Omar를  치면 그에 대한 많은 정보와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최악의 분쟁 국가 소말리아에서 탈출해 난민으로 살다가 이른바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하원의원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엄청난 일이다. 


그가  그런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딱 꼽아서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일한 오마르의 역량이 비범하게 뛰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미국이 그만큼 난민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는 나라여서 가능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가 개인적으로  운이 좋아서, 시대를 잘 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그가 정말 괜찮은 정치인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도 결혼 이민자인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이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일한 오마르와 달리 당의 지지도로 선출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나라에서 탈출해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극한의 인내와 자기 절제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요즘 나는 한국에서 불거지는 난민 문제를 보면서 아프리카에 가서 아프리카 발전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온  아프리카 난민들이 인간답게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난민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싫어도 난민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이 아닌 세계라는 개념으로 공간을 넓히면 난민은 난민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세계인이 된다.


좋은  교육을 받고 꿈을 이루고 싶은 아프리카의 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이 혹시라도 난민의 신분으로 한국에 오게 된다면, 한국이 그  아이들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면 어떨까. 아직은 많이 멀었다고 생각되지만, 최근에도 이주민 한 부모 가정의 청소년이  한국 아이들의 집단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분노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언젠가 한국에도 일한 오마르 같은 난민 출신의 정치가가 탄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더불어 지금은 막막하지만 위의 소말리아 소녀도, 그리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아프리카 소녀들도 패션 디자이너든 무엇이든 꼭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24.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 부르키나파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