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는 날이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이런저런 문장을 적어보지만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을 넘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상태였다. 오늘도 이렇게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속에는 점점 그늘이 드리워져만 갔다.
유명한 작가들은 매일 자신이 써야 할 분량을 정하고 어떻게든 채워나간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한 하루키는 하루 무조건 네 시간씩 글을 쓴다. 그가 하루 동안 써내는 분량은 200자 원고지 20매씩이다. 나는 하루키의 열혈 팬은 아니지만 그처럼 성실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그래서 글이 아무리 막히더라도 가급적이면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일단은 계속 붙들고 있어 본다. 하지만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빈 화면을 바라보며 졸음과 싸우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나는 하루키가 될 수는 없나 보다.
결국 오늘도 아무것도 써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사로잡혀 혼자 끙끙 앓던 중 예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김창완 아저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라디오에서 호스트를 맡고 있던 김창완 아저씨는 직장생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어느 사연자를 위해 직접 손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그는 손편지에 동그라미 마흔일곱 개를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두 개에만 체크표시를 했다. 아저씨는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리는 날보다 조금은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리는 날이 더 많은 게 우리의 일상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였다.
나는 노트북은 잠시 덮고 나한테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했다. 오늘 내가 그린 동그라미는 조금 찌그러진 동그라미구나 하면서 말이다. 중요한 건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게 아니라 못난이 동그라미도 동그라미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였다. 글이 조금 안 써진다고 조급해질 필요는 없었다. 잘 안 써지면 그냥 안 써지는 날이라 생각하고 다른 일을 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글은 잠시 뒤로 하고 다른 할 일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학교 수업을 듣고 몇 챕터 안 남았던 소설을 마무리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친형을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다시 노트북을 켰다. 그러자 낮과는 다르게 글이 써졌고 나는 내 못난이 동그라미를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