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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누 Jun 27. 2021

생일만큼은 지켜내야 한다

<인문대 403호>


 6월 20일은 내 형의 생일이었다. 동생으로서 좋은 선물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엥겔 지수가 원룸 천장을 뚫어버린 탓에 톰 브라운 지갑 대신에 밥이나 한 끼 사주기로 했다. 원래는 집 근처에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 작은 초밥집을 가기로 했지만 정작 가게가 당일은 휴무일이라 형의 집에서 그냥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다.


 생일임에도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이는 형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형은 생일인데 친구들한테서 연락이 많이 오지 않아 기분이 별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은 소파에 드러누워 무기력하게 휴대폰 화면만을 쳐다보며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반성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형이 큰 덩치에 비해 얼마나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에 다시금 깨달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축 처져있는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문득 카카오톡에서 형의 생일 알림이 꺼져있는 게 떠올라 형한테 일부러 꺼둔 게 아니었냐고 묻자 형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금시초문이라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형한테 내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생일인 친구’라는 항목에 형의 이름이 뜨지 않는 걸 보여줬고 형은 그제야 ‘그래! 어쩐지 그럴 리가 없는데...’ 라며 탄성을 내지르고는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았다.


 비록 초밥 저녁은 아니지만 충분히 맛있는 치킨 저녁을 먹고 오는 길에 할리스커피에서 가져온 신상 조각 케이크와 더리터에서 사 온 천오백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형을 위한 작은 생일 파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내가 돌아간 후에 형은 친구들한테 직접 전화를 돌려 축하(?)를 받았다고 했다. 친구들한테 강제로 축하를 받는 기분이라 조금 언짢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결 나아졌다고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생일을 챙긴다는 게 조금은 창피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작은 위로라도 필요한 지금 시기에 1년에 하루 정도는 나를 위한 날이 있는 것도 썩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특히 좋은 날보다는 힘들고 지치는 날이 더 많은 요즘 하루 정도는 남의 기분보다는 나의 기분을 우선시하는 순간도 가끔씩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우린 생일만큼은 지켜내야 한다. 누구나 생일 하루만큼은 이유 불문하고 행복해질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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