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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규 Sep 29. 2024

의식은 무의식에 어디까지 훈수를 둬야하나

최적의 낄끼빠빠를 찾아서

지네의 딜레마라는 개념이 있다. 지네가 아무 생각 없이 걸을 때는 별 문제가 없다가, 발을 내딛는 순서를 의식하는 순간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는 우화에서 나온 개념으로, 무언가를 잘 하려고 의식이 개입하는 순간 오히려 그걸 망쳐버리는 것을 말한다.


리듬게임처럼 정신없이 박자를 맞추는 일을 할 때, '내가 이걸 어떻게 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불쑥 들게 되면 갑자기 박치가 되어 목표를 놓치게 되는 경우는 다들 겪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예전에 스크린 야구장에서 공을 의식적으로 맞추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자 타율이 폭등한 신기한 경험도 있다.


반대로 의식이 적절히 개입하면 순식간에 성과가 오르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키보드 타자를 빨리 치고싶은 경우, 내가 입력하게 될 단어의 키보드 위치를 머릿속에서 한 번 떠올린 후 무의식이 그것을 따라치게 하는 식으로 타건을 하면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의식이 빙산의 윗부분이라면 무의식은 물 속에 잠긴 부분이다. 진화된 세월을 보면 무의식의 세계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식은 무의식에 함부로 개입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손에 물컵이 든 쟁반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닫힌 문을 열어서 통과하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일을 보통 아무 생각 없이 해내지만, 알고 보면 신체의 수 많은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수 백 가지 센서 데이터를 종합하여 근골격계라는 각종 액추에이터를 정밀하게 조절함으로써 쟁반의 균형을 유지하고, 물컵의 진동 주기를 최소화하여 물넘침을 억제하며, 신체의 직선 및 회전 운동을 적절히 조합하여 문을 넘어 이동하는 말도 안되게 복잡한 과정이다. 이 세부 과정에 의식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다만 무의식에 조심스럽게 부탁할 뿐이다.


컴퓨터 과학에는 사용자 영역과 커널(운영체제) 영역이라는 두 영역이 있다. 사용자가 커널에게 동영상 파일을 여는 일을 부탁하면, 커널은 직접 디스크와 메모리 같은 하드웨어를 제어하여 동영상 파일을 열어준다. 이런 부탁을 시스템 호출(system call)이라고 하는데, 이런 방식은 인간의 의식, 무의식 영역과 매우 닮아있다. 우리는 어딘가로 이동할 때 '걸어서 저곳으로 가야겠다' 정도로만 생각하면 무의식이 알아서 다리를 움직이지, 직접 우측 대퇴사두근을 이완함과 동시에 종아리근육을 수축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의식이 무의식에 일종의 '걸어가라'는 시스템 호출을 하고, 나머지 근육 같은 신체 하드웨어는 무의식이 제어하는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에서는 일반 사용자가 하드웨어를 직접 다룰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효율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필요에 따라 커널을 잘 호출해야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무의식의 영역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의식이 잘 하는 게 있고, 무의식이 잘 하는 게 있다. 무언가 이상하게 잘 안 될 때는 의식의 개입 정도를 조절해보면서, 내 의식이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 것인 지 확인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의식 개입의 정도와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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