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마지막 회차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
짧게 정리하면 '너의 이름은'의 현실판이라고 해도 될 듯합니다. '너의 이름은'에서의 재난, 혜성충돌은 지진의 은유였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의 생존자인 스즈메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답게 희망 가득한 해피앤딩으로 끝났지만 극장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자정의 공기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스즈메가 센다이의 자신의 집이 있던 자리, 쓰나미가 훑고 지나가고 남은 집의 잔해에서 자신의 일기장을 담은 상자를 찾아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2019년 11월의 어느 날, 저도 같은 자리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일본건축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사건의 기록을 남겨놓고 싶었기에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답사하고 나서 방문한 현장이었습니다.
주택지였던 주변 수 킬로 근방은 쓰나미로 텅 빈 벌판이 되어버렸기에 아침 태양 아래 서 있는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집의 가장 단단한 잔여물인 기초, 그리고 그것마저도 흙으로 되돌리고 있는 무성한 잡초뿐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비현실적인, 뭔가 뒤틀린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상의 공간이 순식간에 폐허, 유적이 되고 삶의 공간이었던 주택이 일순간에 무덤이 되어버린, 서로 관련이 없는 것들이 폭력적으로 하나로 합쳐진 느낌이었습니다.
자비심 없는 자연, 그로 인해 일순간 사라진 일상의 대화들 - 잘 다녀오라는 아침인사, 찬거리를 준비하려 온 주부와 상인이 나누는 농담, 강독하는 선생님들의 낭랑한 목소리와 연필심이 종이를 긁는 소리들, 그 앞에 건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 건물이었던 잡초 속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제게 '건축 따위는- '이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건축의 가치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