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hisa Hirata_Tree-ness house
일본 건축을 탐방하다 보면 그들이 식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영화의 조연으로 화초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천후의 변화무쌍함을 견뎌내야 하는 풀과 나무의 운명이 일본의 와비사비 わび・さび 문화와 어울리기 때문일까요. 최근 개봉되었던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에 등장하는 정원수는 주인공의 삶을 뒤흔드는 운명과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암시하기 위한 매체로 사용됩니다. 식물은 그 자리에서 차가운 눈과 쏟아져내리는 폭우를 그 자리에서 묵묵히 받아냅니다. 하지만 언제가 밝은 태양을 다시 맞이하고 말죠.
이것을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는 동양적인 자연관이라고 한다면, 자연의 구조에서 작동원리를 추출하여 현실에 대입시키려는 과학적인 자연관이 있습니다. 건축가 아키히사 히라타는 식물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식물은 유기체입니다. 나무는 잎, 줄기, 뿌리 등 각기 생명력을 가지는 다른 형태의 요소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런 개별 요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환경을 스스로 만듭니다. 예를 들면, 나뭇잎은 빛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광합성을 위해 다른 잎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합니다. 음지에서는 빛이 닿는 쪽으로 줄기를 뻗기도 합니다. 이런 개별적인 움직임이 모여 나무 전체의 복잡한 구성을 이루어갑니다. 이러한 모습을 건축가 아키히사 히라타는 tangling이라고 표현합니다.
tangling은 원래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아키히사 히라타는 부분적 요소가 개별적 최적화를 위해 운동함으로써 복잡한 구성을 이루고, 그 결과 전체적으로도 이상적인 상태가 되는 모습을 뜻하는 어휘로 재 정의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습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 개별의 이익 추구가 자원의 이동과 노동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궁극에는 전체를 이롭게 한다는 경제 논리 - 과도 닮은 점이 있습니다. 하나의 식물, 독립된 유기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리적 효율성이 필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식물과도 같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에너지와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이 요구되는 건축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겠습니다.
건축의 평면계획에 있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면적을 기능으로 구분하고, 이것으로 각 층의 평면을 만들어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2차원을 바탕으로 한 사고가 설계하는 입장이나 짓는 입장에서 가장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부분적 요소들의 상호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됩니다. 여기에 일조, 프라이버시, 접근성 등 주변 환경에의 대응이라는 과제가 추가되면 계획은 더욱 복잡해지며 최적의 해법을 얻기는 힘들어집니다. 쌓기 식 공간 구성법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키히사 히라타는 이러한 전통적인 설계 방법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공간 구성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그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건물이 언제나 이상적인 환경이나 설계조건에서 설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건물들이 밀집한, 폭이 좁고 깊이가 긴 이 땅에 집합주택을 설계할 경우 세대별 환경을 균일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아키히사 히라타는 방을 입체적으로 조합하여 복층의 단위 세대를 만들고 이렇게 구성된 단위세대를 채광 등의 환경을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조합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 작업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단위 세대의 구성과 전체 구성이 만족할 만큼의 수준에 오를 때까지 전체 작업 과정을 피드백합니다. 결과적으로 각 세대는 최적의 내부 공간과 외부 환경을 갖게 됩니다.
저층부에는 채광이 필요 없는 갤러리를 도입해서 주거가 환경이 좋은 상층부로 배치되도록 하였습니다. 개별 세대의 입체적 구성은 내부 공간의 자연스러운 프라이버시 확보와 함께 입체적인 구성으로 중간에 보이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 결과, 각 실은 바깥쪽으로 는 도시, 안쪽으로는 내부에 숨어있는 반-외부 공간에 면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방과 욕실 앞에는 포켓 정원이 마련되어 풍요로운 내부 공간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자연에는 2차원이란 한정적인 공간 개념이 없습니다. 사람만이 여러 가지 현실적인 편의성 때문에 평면에 한정된 공간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3차원 건축 디자인을 용이하게 하는 설계 도구의 발달과 복잡한 구조물을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되고 있으므로 조만간 우리의 거주 환경은 좀 더 입체적인 모습을 띄지 않을까 합니다. 그 시대의 공간환경은 지금의 그것보다 훨씬 풍요로울 것입니다. 물론 집을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로만 여기는 왜곡된 풍조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