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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mji Feb 14. 2019

사람을 가르치는 건축

Riken Yamamoto_Saitama Prefectural Univ

지식의 축적과 전달이 대학이 가지는 기본 역할임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고등교육의 목표는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교류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갖도록 하는 것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각은 창발성의 기본요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떻습니까.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교육이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입시교육이 대표하는, 그리고 고등교육까지 일반화된 일방향의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제도를 비판한 것입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제도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로운 교육공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통을 통해서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새로운 교육공간이 시급합니다.


최근 계획되는 학교 건축에서는 소통을 촉진하는 입체적이고 쾌적한 공용 공간이 드물게나마 계획되기 시작했습니다. 교실을 단순 적층 시켜 밀도를 높이는 학교 건축의 고답적 타이폴로지를 깨뜨리는 이러한 변화는 일본에서 20여 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그 선두에 건축가 리켄 야마모토가 있습니다. 판교의 공동주택 프로젝트로 국내에 이름이 알려진 그는, 언제나 건물 사용자 간의 소통과 지역사회로의 확산을 주제로 삼는다. 이러한 개념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이타마 현립 대학교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사이타마는 도쿄 중심에서 50km 북쪽에 위치하는 베드타운입니다. 한국과는 달리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베드타운은 주택가와 촌락의 모습이 섞인듯한 한가로운 모습입니다. 사이타마 현립 대학교는 이러한 풍경의 끝에 위치합니다. 이러한 저밀도의 콘텍스트에 병렬 배치된 4층 높이, 폭 50m, 길이 250m의 강의동 두 개는 매우 이질적인 풍경을 형성합니다. 게다가 박스형 건물의 입면에서 보이는 반복되는 모듈은 단조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왜 이렇게 설계했을까요.


이 건물이 준공 1999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세기 말 까지도 드물었던 학제, 분야 간의 교류와 융합에 대한 연구는 네트워크의 발전에 따른 산업구조의 재편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이한 학문과 기술의 융합을 뜻하는 ‘통섭’ 이란 단어가 1998년을 대표하는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이 건물은 그 이듬해 완공되었습니다.



사이타마 현립 대학교는 간호, 사회복지 그리고 재활치료를 가르치기 위한 세 가지 학부로 구성되었습니다. 리켄 야마모토는 이 학부들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며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각 학부의 개별영역을 강의동에 배치하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단층 부분에는 모든 학부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계획했습니다. 강의동의 길이방향으로는 통로와 홀의 역할을 하는 4층 높이의 열린 공간을 만들어 수평적 연계를 도모하고, 계단, 승강기와 같은 수직이동 동선을 배치하여 입체적 연결을 꾀했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이용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교차됩니다.



‘간호학부 학생 K는 엘리베이터의 4층 버튼을 눌렀다. 403호 계단식 강의실의 생리학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엘리베이터의 벽은 투명해서 올라가는 동안 건물 내부 전경을 볼 수 있었다. 1층 홀에서 진행되는 사회복지학부 레크리에이션 실습 행사에 흥미를 느낀 K는 수업이 끝난 후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K는 강의실 복도와 연결된 공중 보도를 건너다 3층 복도를 지나는 친구 J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J는 재활치료 전공이지만 생리학 수업을 같이 듣는다. 생리학 강의실 벽이 유리로 된 덕에 수업을 엿본 학생들이 선택과목으로 신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J도 그들 중 하나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소통이 일상의 이벤트가 며, 건물은 묵묵 배경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무채색의 재료, 단순한 디자인, 반복되는 모듈은 그 앞에 놓인 사물을 돋보이게 합니다. 건물 대부분을 아우르는 무심한 듯한 디자인은 사용자를 공간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기획된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이면 단순, 반복되는 디자인은 건물의 품질향상에 도움이 되는 부수적인 잇점이 있습니다. 명쾌한 모듈 계획과 군더더기 없는 디테일은 자재비용과 인건비를 떨어뜨려 잉여 비용을 중요한 곳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디자인 전략은 리켄 야마모토 설계 공장이란 이름과 잘 어울리는 콘셉트입니다.



이제 건물 디자인에 대한 의심이 모두 풀렸습니다. 작지 않은 볼륨과 단순한 디자인은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소통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의 발현입니다. 그는 ‘통섭’으로 대표되는 담론에 가까운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제안하고 구조와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고려하였습니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세밀하게 계획된 공간은 학문 간의 융합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소통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그렇게 학교라는 작은 생태계는 좀 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모하여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사회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입니다. 이것이 리켄 야마모토가 본 프로젝트에서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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