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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mji Oct 19. 2018

건축에서 형태는 중요한가

SANAA_21th century museum

형태는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까요.  건축가가 의도한 계획 그 자체가 그 건축을 지배하는 유일한 가치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그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다른 무엇인가가 겹쳐질 수 있는, 비어있는 곳을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풍부함이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SANAA가 설계한 21세기 미술관은  평탄한 경사면으로 이루어진 공원 한가운데  33개의 상자와 3개의 원통 모양의 공간이 흩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이 모든 단위 공간들은 쟁반 모양의 콘크리트 슬라브 위에 얹혀있습니다. 건물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이 슬라브의 끝에 설치된 투명한 유리벽입니다.


이 건물은  동북쪽으로 약 200미터 거리에 위치한,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3대 정원중 하나인 겐로쿠엔兼六園을 현대적 관점에서 번안해서 설계한 것입니다. 겐로쿠엔은 1620년대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여러 대를 거쳐 조금씩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릅니다. 정원 안에는 특별한 주제를 가진 공간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 접근 경로가 매우 다양하며, 원경과 근경 모두 아름다운 정경을 이루도록 세심하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21세기 미술관을 거니는 것은 겐로쿠엔의 오솔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동선의 구조는 겐로쿠엔과 마찬가지로 비 위계적이기 때문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의 접근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경로들은 기능적인 복도가 아니라 풍경처럼 인식됩니다. 반사하는 성능을 가진 특별한 내부 마감재료를 사용하고 동선의 양 끝을 외부공간과 연결했기 때문이다. 건물의 내부와 바깥의 경계에 서 있는 유리벽은 오직 기후를 조절하기 위한 것일 뿐, 존재감이 거의 없기 때문에 건물의 내부가 마치 외부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유리를 고정하는 수직 부재를 제거한 섬세한 디테일의 유리벽이 이러한 느낌을 강화합니다.


그렇다면 전통 정원의 현대적 해석 - 이것이 21세기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가치일까요? 오후부터 밤으로 이어져 건물의 모든 표정을 지켜본 결론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건물에 투영된 천공의 변화 그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이었습니다. 건물은 배경으로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있었습니다. 건물의 내부에 놓인, 군더더기 없이 마무리된 흰색 벽의 갤러리 공간은 전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관람객과 태양이 펼치는 일상의 연극의 배경이 디고 있었습니다. 유리면은 내부에서는 외부의 모습을, 외부에서는 내부의 모습을 여과 없이 투과시켜 보여주거나, 구름 가득한 하늘 또는 낮게 떠 있는 태양의 변화를 시시각각 반사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도시에서는 과도한 형태 조작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오만에 가득 찬 건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물일수록 내포하는 의미는 빈곤하기 마련입니다. 대개 걸작이라고 하는 문화적 산출물은 시대에 따라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가지는 것들입니다. 


건축은 문화의 일부이며, 단편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들은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관찰하고 뜯어볼수록 새로운 의미가 도출되는 건물과는 달리 일목에, 그것도 고정되어 변치 않는 몇 가지의 가치만이 드러나는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쇠락해버리고 맙니다.


시각적인 것이 실체와 분리되고 과도하게 증폭되어 소비되는 시대, 즉 스펙터클의 사회가 도래하고 있음을 기 드보르는 50년 전에 감지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기는 하나 우리 사회는 여기에 더 깊게 들어선 듯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직접적으로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는 가치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숫자로 환산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축은 그 시대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건축은 삶의 양태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건축은 어떤 모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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